인천도시산업선교회 보존협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존치 문제 긴급 토론회’
▲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자 노동·인권 운동의 표상인 '인천도시산업선교회' 모습. /사진제공=인천도시산업선교회보존협의회
▲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자 노동·인권 운동의 표상인 '인천도시산업선교회' 모습. /사진제공=인천도시산업선교회보존협의회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자 노동·인권 운동의 표상인 '인천도시산업선교회(이하 인천산선)'가 구도심 개발사업인 인천 동구의 '화수·화평 재개발 사업'에 밀려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인천산선은 엄혹했던 군사철권 통치 시절, 동일방직과 삼원섬유, 한국기계, 대성목재, 반도상사 등 인천의 대표적 산업현장에서 민주노조를 만들어내고 조화순, 황영환, 김근태, 최영희, 인재근 등 기라성 같은 민주인사들을 배출한 민주화와 민주노동운동의 산실이다.

인천도시산업선교회 보존협의회는 지난 22일 오후 인천시의회 세미나실에서 '인천도시산업교회의 사회적문화적 의미와 존치 문제'를 논의하는 긴급토론회를 개최했다.

▲ 인천도시사업선교회 총무 출신인 김정택(왼쪽부터) 목사와 김도진 목사가 22일 인천시청 앞 인천애뜰광장에서 선교회 건물을 지키기 위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 인천도시사업선교회 총무 출신인 김정택(왼쪽부터) 목사와 김도진 목사가 22일 인천시청 앞 인천애뜰광장에서 선교회 건물을 지키기 위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박상문 지역문화네트워크 공동대표가 좌장을 맡아 진행한 이날 토론회에는 정세일 인천생명평화포럼 상임대표, 김영철 인천주거복지센터 상임이사, 이희환 인천도시공공성네트워크 대표, 조성혜 인천시의회 운영위원장, 박우섭 전 남구청장 등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이 자리는 인천산선의 운명을 결정할 인천도시계획심의위원회의 개최를 하루 앞두고 ‘건물 존치 대책’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와 관련 23일 열린 도시계획위원회는 주택재개발 조합측이 제출한 ‘사업 변경안’을 승인하면서 ‘인천산선 건물 철거’를 전제로 ‘건물 이전에 대한 협의를 진행할 것’을 권고해 보존협의회 측이 요구한 ‘현 위치 존치’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에 따라 인천산선 존치와 관련, 인천시와 동구청, 재개발 사업자에 대한 비판을 쏟아낸 토론회 참석자들의 발언내용을 요약·정리해 바람직한 인천의 미래를 위한 시민들이 선택이 무엇인지 고민해본다.

▲ 이희환 인천도시공공성네트워크 대표
▲ 이희환 인천도시공공성네트워크 대표

이희환 : 신성한 노동의 가치와 민주화 정신을 재개발 이익으로 바꿔치기 할 것인가?

인천산선은 인천 현대사의 한 축을 담당하면서 고난의 시대를 관통해왔다. 한국전쟁의 잿더미를 딛고 급격한 산업화와 공업도시화가 추진된 1960년대 이후 항구도시인 인천에 대공장들이 들어서면서 노동자의 도시로 재편됐다. 그 산업사회의 한가운데 힘없는 노동자들과 함께 하면서 이 땅의 노동인권과 해방을 향해 낮은 곳에 임한 교회가 인천산선이다.

1961년 주안교회 조용구 목사와 내리교회 윤창덕 목사는 인천에 내려온 조지 오글 선교사와 함께 화수동 183번지의 초가집을 매입해 '도시산업선교협회'와 '노동자교회(현 일꾼교회)'라는 간판을 내걸고 본격적인 '산업선교' 활동을 모색했다.

초기 산선의 산업선교 활동은 교회에서보다는 직접 공장에서 노동자와 함께 일하면서 노동자 상담과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공장 목회활동으로 전개됐다.

1972년 10월 유신을 전후해 중앙정보부의 대대적인 탄압에도 불구하고 인천산선의 활동은 노동현장에서 눈부신 성과를 일궈냈다. 이에 대해 자본과 국가는 산선의 활동을 공산주의로 몰아치는 대대적 이념공세를 전개했다. 1978년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똥물투척 사건은 반산선 공세의 일환으로 발생한 것이다.

노동자교회의 후신인 일꾼교회에는 30여 명의 노동자들이 합숙을 하면서 파업투쟁을 견뎌낸 지하방과 해고자들의 복직투쟁을 위해 장기간 숙소로 사용하던 옥탑의 가건물이 그대로 남아있다. 한쪽 창고에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인천산선의 역사를 말해주는 각종 문건들이 '민주화운동사료'로 보관돼 왔다.

이처럼 인천산선은 한국의 산업화를 이끌었던 노동자들의 피난 장소이자 노동자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일하는 자'들의 배움의 터전이었고, 군부독재정권에 맞선 '한국과 인천 민주화운동'의 근거지였다.

하지만 '화수·화평 재개발 사업'을 통해 이익을 얻으려는 건설사와 고밀도 개발로 시세차익을 얻으려는 일부 주민들, 아파트 개발로 인구를 유입해 세수를 확보하려는 행정당국의 방관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인천시 당국은 인천산선의 철거 사태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인천도시계획위원회는 재개발법의 테두리 속에 갇혀 엉뚱한 결론을 내리지 말고, 진정한 인문적 정신이 살아있는 용단을 내려야 한다. 재개발에 포위된 인천산선의 운명을 여하히 결정하느냐에 따라 인천이라는 도시의 인문적 포용 여부가 판가름 날 것이다.

▲ 정세일 인천생명평화포럼 상임대표
▲ 정세일 인천생명평화포럼 상임대표

정세일 : 노동의 가치와 민주화 정신을 재개발 이익으로 환원해서는 안 돼

인천산선을 어떻게 주변과 조화롭게 보존해 갈 것인가를 토론해야 할 자리를 '개발을 원하는 사람들'과 '존치를 원하는 사람들' 간의 싸움으로 몰아가는 현실이 안타깝고 아쉽다.

인천시 당국은 도시개발계획을 앞세워 원안을 통과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이를 보면서 “인천이라는 도시를 어떤 모습으로 가져가야 하는가에 대한 장기적 안목이 있느냐”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1885년에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등 미국의 선교사들이 인천항을 통해 들어온 것이 대한민국의 기독교 역사다. 이 때 함께 들어온 문물과 역사, 문화가 인천이라는 도시의 특성을 이루고 있다.

인천은 노동의 역사가 출발한 도시이며 여기에 맞닿은 것이 인천산선이다. 인천에 있는 오래된 공장들의 보전, 활용방안과 함께 산업박물관이 논의되고 있다. 이처럼 노동자들이 노동을 하던 건물과 기계가 있다면 노동자들의 삶과 애환이 서려있는 산업선교센터가 같이 있어야 앞뒤가 맞는데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도시와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한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신성한 노동의 가치와 민주화 정신을 재개발 이익이라는 경제적 가치로 환원해 버릴 것이냐는 얘기다.

인천은 산업을 이뤄내는데 중추적 역할을 했던 도시다. 여기에서 노동자가 빠진다면 건물만 남아 있는 도시가 될 것이다. 지금 당장 부동산을 짓고 이익을 보는 것이 인천이 앞으로 행복하고 '지속가능한' 발전하는 도시로 가는데 도움이 될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 김영철 인천주거복지센터 상임이사
▲ 김영철 인천주거복지센터 상임이사

김영철 : 영등포산선, 기독교 역사유적·민주화운동 사적지로 지정돼

산업선교회 양대 산맥은 인천산선과 더불어 영등포 산선이 꼽힌다. 그런데 1958년 건립된 영등포산업선교회와 1961년 세워진 인천도시산업선교회의 상황은 너무 형평성이 안 맞는다.

영등포 산업선교회는 2010년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에서 한국기독교 역사 유적지 제8호로 지정됐고 민주화운동기념비도 건립됐다. 당시 총회는 “산업선교회 건물은 산업사회에 헌신했던 무형의 가치가 충분히 인정되고 사회적으로도 민주화운동의 기념사적지로 지정되는 등 선교회 활동과 역사적 가치를 공식 인정받았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영등포 구청이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의 산실인 산업선교회관을 중심으로 남부지역의 노동 관련시설을 집약한 영등포구 노동복합시설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영등포구가 10억 원을 지원하고 선교회에서도 5억 원을 마련해 리모델링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인천도시산업선교회 문제를 영등포의 사례와 비교해서 지역사회의 여론을 형성하고 교회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논의해 나가야 한다.

▲ 박우섭 전 인천 남구청장
▲ 박우섭 전 인천 남구청장

박우섭 : 도시계획심의위원회, 인천산선 존치를 전제로 한 설계계획 제출하라고 요구해야

인천산선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인천시와 시민들의 확고한 의지와 의사표시가 가장 중요하다. 도시계획심의위원회는 법에서 다 다루지 못한 것을 다루는 상당한 재량권을 갖고 있다.

가장 먼저 도시계획심의위원회가 '선교회를 꼭 존치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런 뒤 사업주체인 조합이나 설계사무소에 “설계계획을 다시 제출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이럴 경우, 재개발조합은 '선교회관을 존치하면 건물을 제대로 올릴 수가 없고 충분한 용적률을 확보하지 못해 결국 수익이 나지 않아서 할 수 없다'고 주장하게 된다.

하지만 선교회를 존치시키면서 수익을 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는 사업주체인 조합이나 설계하는 사람들이 제안해야 할 몫이다. 분양가 등 다양한 요소들이 작용하는 수익성 문제를 들어 '사업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다른 대안들을 연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시계획심의위원회는 이 같은 조정을 거치면서 결정을 내려야 하며, 이 과정에서 정책 책임자의 적극적인 의지와 시민사회의 행동이 함께 해야 한다.

▲ 조성혜 인천시의회 운영위원장
▲ 조성혜 인천시의회 운영위원장

조성혜 : 선거를 통해 역사와 생태가치 추구하는 정치세력 선택해야 한다

재개발과 관련해 도시계획과 문화유산, 산업유산의 보존과 존치 문제가 늘 충돌한다. '사적 이해'를 도모하는 측과 역사적이고 문화적 가치를 존중하는 '공적 이해'가 충돌할 때, 문제 해결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도시계획과 관련된 정치철학이다.

이는 주민의 표에 의해 좌우되고, 그 결과에 대해 민주적 선거제도를 통해 심판하고 좋은 사람을 뽑게 된다.

이런 정치철학을 끝까지 밀고 나가면서 제도화하고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것이 제대로 안되면 표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역사와 생태가치를 포함하는 도시발전계획에 대해 시민들과 공감하고 끊임없이 인문학적 가치를 반석 위에 올려놓는 철학이 중요하다.

여기에 공감하는 강력한 정치세력을 형성하는 것이 우리에게 과제였지만 (인천산선의 상황에서) 이에 대한 아쉬움을 보게 된다.

조례나 규칙을 만들어 시스템화하는 것은 늘 느리다. 이런 부분을 시민들이 심판해야 한다.

/글·사진=정찬흥 논설위원 report61@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