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 돋친 얼굴로 건넨 속삭임…“다가오지 마”

인간이 자연에 가한 무자비한 폭행의
방어기재 덤불로 대립적인 관계 표현

특유의 비비드한 컬러와 세밀한 묘사
생명력·역동성 보여주며 아우라 발산
▲ 수원 영선갤러리가 홍일화 개인전 '가시숲' 전시를 열고 있다.
▲ 홍일화 작 'Epine.P.E 0105'.

베이고 잘리고 삶의 터전을 빼앗긴 숲, 가지들은 얽히고설켜 가시덤불을 이뤘다. 덤불이 울창해진 숲은 사람들의 발길이 점차 끊겼고 뿔뿔이 흩어져 있던 산새들은 숲으로 날아들기 시작했다. 덤불 속에 있는 식물과 동물들은 활기차고 기분 좋은 나날을 보내며 더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덜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덤불과 사람의 싸움이 시작됐다.

수원 영선갤러리가 재불작가 홍일화의 36번째 전시 '가시숲(FORET DE L'EPINE)'을 열고 있다. 이번 전시 '가시숲'은 인간이 자연에 가한 무자비한 폭행에 대해 고발하며 '가시'라는 방어기제를 드러낸 자연의 끈질긴 생명력을 회화 작품으로 표현한 전시다.

전시는 가시 돋친 꽃을 오브제로 홍일화 특유의 비비드한 컬러, 세밀한 묘사가 더해져 작품에 생명력과 역동성을 불어넣고 있다. 2m가 넘는 대형 캔버스에 나무가 이룬 숲의 풍경은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내 뿜으며 갤러리 전체를 압도하고 있다. 마치 자연 위에 올라설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의 치부를 드러내기라도 하듯, 보는 이를 꼼짝없이 작품 속으로 빨아들이고 있다.

작가는 지난 2019년 제주 곶자왈 작업을 모티브로 가시로 대변되는 '숲'의 반란을 직관적으로 나타냈다. 작품은 지난해 서울 갤러리 마리에서 가진 임시풍경(EPHEMERAL LANDSCAPE) 전의 연장 선상에 있다. 숲, 강물, 바다, 파도, 대지 등을 배경으로 핑크를 활용해 강한 인상을 남겼던 임시풍경 시리즈 작품도 이번 전시에서 소개됐다. 당시 홍일화 작가는 작가 노트를 통해 “생태학적 야생 공간인 숲은 공포의 대상인 한편 인간이 범접할 수 없기에 신비를 간직하고 있는 미지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 '가시숲'에서는 신작 12점도 공개했다. 가시 돋친 형형색색의 꽃을 전면에 배치한 'Epine.P.E' 연작 시리즈를 올해 처음으로 공개하면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김성호 미술평론가는 “자연을 대별하는 '숲'은 작가 홍일화에게 곶자왈을 만나기 전까지는 보편적이고도 관성적인 인식의 대상이었지만 홍일화 그가 대면하는 자연 풍경은 어느 하나 고정된 것 없이 변화를 지속하는 존재임을 피력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홍일화 작가는 “자연의 순리라는 의미를 강조한 전시다. 가시숲은 자연에겐 안전한 삶의 터전으로 작용하지만, 인간들에겐 위협받는 존재로 여겨진다. 가시숲이라는 방어 체계 속에 동식물들이 또 다른 군락을 형성해 살아가지만, 인간은 또다시 이를 위협하려 들면서 인간과 자연의 대립적인 관계를 표현했다”라고 작품 의도를 밝혔다.

홍일화는 프랑스 École des Beaux-Arts을 졸업 후 DNSEP-Diplôme national supérieur d'expression plastique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는 ㈔한국미래환경협회 홍보대사를 비롯해 파리재불작가 소나무협회 회원이자 한국판화가협회 회원으로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주로 '자연', '친환경', '여성 인권'을 소재로 화려한 색채와 사실주의적 화풍이 도드라지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전시는 다음 달 30일까지 계속되며 전시 관련 보다 자세한 사항은 영선갤러리 홈페이지(https://youngsungallery.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