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처럼 빠져나간 물량…수도권 최고 항구 명성에 금이 가다


입출항 시간 긴 갑문식 도크 제약
선석 차지하려다 '새치기' 사건도

화물 분산·대중국 교역 기지 만들려
정부, 1989년 평택항 개발사업 시동

차량 수출 및 사료·양곡 수입 흡수
2000년 대비 2002년 화물량 41% 증가
인천항의 보조항·소규모 신항 탈피
동북아 중심 항만 넘볼 정도로 성장

세계 경제 변화에 물류 흐름 다양화
항만별 특성 반영 기능 재정립 필요
▲ 평택항 자동차 부두 전경. 인천항과 대조적으로 광활한 평택항 자동차 부두는 하역을 기다리는 수출용 자동차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사진제공=경기평택항만공사
▲ 평택항 자동차 부두 전경. 인천항과 대조적으로 광활한 평택항 자동차 부두는 하역을 기다리는 수출용 자동차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사진제공=경기평택항만공사

전화(前話)에서 제2도크 완공 후 채 5년도 지나지 않아 인천항은 이내 체선·체화가 극심한 항만으로 낙인이 찍히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인천항이 광활한 대해를 향해 열린 자연 항만이 아니라 비좁고 입출항 시간이 긴 갑문식 도크라는 제약 때문임을 말했다. 오죽했으면 선석(船席)을 차지하기 위해 선사(船社)와 항만 관련 직원이 선박의 대기 순서를 바꿔치기해 물의를 빚은 사건이 다 일어났을 것인가. 이 같은 항만 조건을 가졌으니, 그것이 곧 인천항의 한계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올 법도 했던 것이다.

▲ 평택항과 중국 영구, 단동항과의 직항로가 개설된다는 1994년 당시 동아일보의 보도 기사. 1997년까지 평택항에는 3만t급 선착장 13개가 들어설 예정이며 화물선 취항 외에도 여객선도 정기 취항한다는 내용이다./사진제공=동아닷컴
▲ 평택항과 중국 영구, 단동항과의 직항로가 개설된다는 1994년 당시 동아일보의 보도 기사. 1997년까지 평택항에는 3만t급 선착장 13개가 들어설 예정이며 화물선 취항 외에도 여객선도 정기 취항한다는 내용이다./사진제공=동아닷컴

 

평택항은 정부가 체선(滯船)체화(滯貨) 현상이 심한 인천항의 화물을 분산 처리하고, 서해안의 대(對) 중국 교역 기지 항으로 개발하기 위해 89년부터 대대적으로 건설에 나섰다.

1998년 4월24일의 조선일보의 보도 내용이다. 인천항이 극심한 체선, 체화로 선박들이 입항을 꺼려하는 기피 항만이 되다시피 한 데다가 그로 인한 경제적 손실 비용도 막대함에 따라 그 대안으로 평택항을 서해안의 교역 기지로 건설하리라는 것이다. 결국 이렇게 되고 만 것이다.

▲ 2001년 4월3일자 동아일보 기사이다. 당시 인천의 남항, 북항 개발이 지지부진하고, 2000년 평택항이 본격 운영되면서 하역 물량을 비용이 저렴하고 편리한 평택항, 목포항에 뺏길 것이라는 우려를 담은 내용이다. “인천항 옛 명성 사라지나”라는 기사 제목이 그 사실을 짐작하게 한다./사진제공=동아닷컴
▲ 2001년 4월3일자 동아일보 기사이다. 당시 인천의 남항, 북항 개발이 지지부진하고, 2000년 평택항이 본격 운영되면서 하역 물량을 비용이 저렴하고 편리한 평택항, 목포항에 뺏길 것이라는 우려를 담은 내용이다. “인천항 옛 명성 사라지나”라는 기사 제목이 그 사실을 짐작하게 한다./사진제공=동아닷컴

 

인천항의 최대 경쟁상대로 떠오르고 있는 항만은 경기 평택항. 기아자동차도 이곳에 전용 부두를 설치해 수출 차량의 선적 작업을 벌이기로 했고 사료, 양곡 등의 화물도 8월경 추가로 문을 열 평택항 서부두로 이전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것.

2001년 4월3일자 동아일보는 “인천항 옛 명성 사라지나”라는 제목으로, 어떠한 여건에서도 당연히 인천항을 이용하던 기아차동차의 수출 물량은 물론, 수입 화물인 사료, 양곡 같은 화물도 이 무렵 점차 인천항을 버리고 평택항으로 뱃머리를 돌리고 있음을 보도하고 있다. 기사 구절 중에 '인천항의 최대 경쟁상대로 떠오르고 있는 항만이 경기 평택항'이라는 구절에서, 20년 전의 일이지만,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국가 경제의 활성화라는 대의(大義)를 따질 때 인천항이면 어떻고 평택항이라면 어떤가. 급변하는 국제 무역 환경에 맞춰 화물을 분산 처리함으로써 물류의 신속을 꾀하면서 지역 간 균형 발전을 도모하는 측면에서도 이의를 달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인위(人爲)로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입지와 자연의 악조건을 가진 인천항을 생각할 때,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이 같은 사태는 인천항으로서는 일자리, 일감이 사라지는 절체절명의 문제가 아니었던가.

▲ 2. 2001년 4월2일자 조선일보가 보도한 인천항 자동차 부두 현장 사진. “텅 빈 기아차 야적장”이라는 타이틀 밑에는 “기아자동차가 수출항을 인천항에서 평택항으로 바꾸기로 함에 따라 최근 인천항의 기아자동차 야적장은 텅 비어 있다.”는 사진 설명이 붙어 있다./사진제공=조선일보 DB조선
▲ 2001년 4월2일자 조선일보가 보도한 인천항 자동차 부두 현장 사진. “텅 빈 기아차 야적장”이라는 타이틀 밑에는 “기아자동차가 수출항을 인천항에서 평택항으로 바꾸기로 함에 따라 최근 인천항의 기아자동차 야적장은 텅 비어 있다.”는 사진 설명이 붙어 있다./사진제공=조선일보 DB조선

당시 인천항이 안고 있던 문제를 지적한 다음의 기사는 더욱 생각할수록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2003년 5월27일자 “각광받는 평택항”이라는 제하의 조선일보 기사이다.

이웃한 인천항은 갑문(閘門·선박을 통과시키기 위한 수위 조절 장치)을 통해서만 배가 드나들 수 있는 도크식이다. 따라서 하역량이 늘면 입출항이 늦어지는 약점이 있다. 평택항만공사 황영석 물류팀장은 “수도권 기업들이 화물 입출항이 상대적으로 느린 인천항을 떠나 평택항을 이용하는 일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부두 환경이 비교적 깨끗한 것도 강점이다. 기아차 평택항 출장소 서상쾌 팀장은 “인천항에는 곡물·목재·시멘트가 야적돼 있어 여기서 나온 먼지가 차에 들어가는 일이 많았다”고 말했다. 평택항에서 처리되는 화물량은 지난해 4389만t을 기록, 2년 전인 지난 2000년보다 41% 늘어났다.

이 기사는 인천항의 약점을 아주 노골적으로 기록했다는 느낌이 든다. 갑문식 도크의 한계는 누차 이야기했으니 치우더라도, 인천항은 하다못해 부두 환경까지도 낙제점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인천항에는 곡물·목재·시멘트가 야적돼 있어 여기서 나온 먼지가 차에 들어가는 일이 많았다.”는 것이다. 항구의 격이 이 정도로 떨어졌던 것이다. 2004년 9월7일자 또 다른 기사를 보자.

지난달 25일 경기도 평택시 평택항(平澤港) 동부두 3·4번 선석(船席·배를 댈 수 있는 부두설비). 축구경기장 20개보다 큰 야적장(5만8000여 평)에 들어서자, 미국·캐나다 등으로 수출될 국산(國産) 자동차 4000여 대가 반듯하게 세워져 있었다. 이들 승용차는 한 번에 7∼8대씩 2∼3m 간격으로 줄지어 대형 빌딩만한 크기의 자동차 전용 선박에 쉼 없이 올랐다.

바로 옆 허허벌판에는 대형 롤러 3∼4대가 굉음과 함께 흰 연기를 내뿜으며 지반을 다지기에 한창이다. 토지 매립과 접안시설 공사를 마치고 야적장 및 도로 포장공사가 진행 중으로, 오는 10월 초쯤이면 컨테이너 전용 부두가 들어선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급증한 동북아 지역의 컨테이너항만 물동량을 흡수하기 위해서다. 역내 물동량은 1985년 1259만TEU(Twenty-foot Equivalent Units·컨테이너를 세는 단위)에서 2002년 9237만TEU로 7.3배나 증가했다.

그동안 인천항의 보조항이자 소규모 신항(新港)으로 인식돼 왔던 평택항이 서해안 시대를 담당할 새로운 '동북아 물류(物流)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대중국 컨테이너 화물의 급증과 배후 산업단지의 조성 등으로 항만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데다 기존의 일반 잡화(雜貨) 부두와 더불어 컨테이너 전용 부두도 들어설 예정이다.

그해 8월25일의 평택항 자동차 수출 전용 부두 풍경과 더불어 10월 초 무렵이면 컨테이너 전용부두가 완공되어 “동북아 지역의 컨테이너항만 물동량을 흡수하”리라는 내용이다. 더불어 “그동안 인천항의 보조항이자 소규모 신항으로 인식돼 왔던 평택항이 서해안 시대를 담당할 새로운 '동북아 물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면서 “24시간 하역, 세계 물류 거점으로 사활건 도전”을 펼치고 있음을 대견하게 다루고 있다.

이 기사를 읽다 보면 마치 개항 후 국가 중심항, 인천항의 위치와 위세를 읽는 느낌이다. 그러나 이것은 2004년, 일취월장하는 평택항, 오늘의 평택·당진항의 발전상과 앞으로의 야심을 기록한 것이다.

▲ 넓고 평탄하게 잘 정비된 자연항 평택항의 전경. 선박의 접안이든, 하역 작업이든 편리하고 신속한 양항의 조건을 가졌다./사진제공=경기평택항만공사
▲ 넓고 평탄하게 잘 정비된 자연항 평택항의 전경. 선박의 접안이든, 하역 작업이든 편리하고 신속한 양항의 조건을 가졌다./사진제공=경기평택항만공사
▲ 6. 평택항과 베트남, 태국 간에 신설된 컨테이너 항로를 따라 2018년 6월25일 평택항 동부두 평택컨테이너터미널에 첫 입항한 현대상선의 컨테이너선. 평택항은 동남아로 항로 다변화 구축을 통해 물류 경쟁력 강화를 꾀하고 있다./사진제공=경기평택항만공사
▲ 평택항과 베트남, 태국 간에 신설된 컨테이너 항로를 따라 2018년 6월25일 평택항 동부두 평택컨테이너터미널에 첫 입항한 현대상선의 컨테이너선. 평택항은 동남아로 항로 다변화 구축을 통해 물류 경쟁력 강화를 꾀하고 있다./사진제공=경기평택항만공사

물론 지금이야 인천항도 큰 진화를 이루었으니 새삼 이 같은 지난날의 색 바랜 기사에 마음 쓸 일은 아닐 것이다. 해서, 다 잊고 묻어 두어도 좋은 한낱 과거의 일이라 하면서도 생각해 보면, 사실 국제 물류 환경 변화에 맞춰 인천항 내·외항에 대한 깊은 숙고와 항만 증설, 배후부지 정비, 육로교통 등 제반 문제에 대해 국가든 지역이든 좀 더 일찍이 전진적으로, 종합적으로 지혜와 역량을 모으지 못한 것은 실로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는 점이다.

언제 어떻게 또 다른 시련과 도전이 동북아 중심항이라던 인천항을 엄습할지 모른다. 세계 경제의 변화에 따라 “물류의 흐름도 다양화되는 만큼, 항만별 물류 특성을 반영해 기능을 새롭게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라고 한 지역 또 다른 언론의 지적은 늘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할 경구일지 모른다.

/김윤식 시인·전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