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세 도예가, 세종대왕릉 있는 여주서 한글 활용 작품 빚어
한재준 서울여대 교수, 한글가치 홍보…'아리아리·한글예술'전 참여도
여주세종문화재단, 세종 생생지락 꿈꿔…문화복지 실현 앞장
▲ 정민세 작 '모두다 꽃이야'
▲ 작품 '함께 걸어요_한글 사람들' /사진제공=구리문화재단, 한재준 서울여대 시각디자인과 교수 作
▲ 정민세 작 '꽃 다시부르기'
▲ 작품 '붉은 한글_한쌍의 네발의 동물' /사진제공=구리문화재단, 한재준 서울여대 시각디자인과 교수 作
▲ 정민세 작 '너는 나의 봄이다'
▲ 정민세 작, 티라이트 캔들 홀더 '별헤는 밤'

“내가 꿈꾸는 태평성대는 백성이 하려고 하는 일을 원만하게 하는 세상이다.”

무릇 세종대왕은 이 나라 백성을 가장 사랑한 임금이었음이 틀림없다. 차별 없는 세상을 그렸고, 만백성 모두가 이 세상을 누릴 수 있도록 한글 창제라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오는 15일은 스승의 날인 동시에 세종 탄신 제624돌째를 맞는 날이다. 세종대왕을 마치 스승처럼 여기고 그가 남긴 최대 업적 '한글'을 활용해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이들이 있다. 경기문화읽기 '세종대왕을 사랑한 예술가들', 지금부터 그들을 만난다.

#'문자' 예술이 되다

작업실 벽면으로 장식처럼 내걸린 도자기가 멋스럽다. 멀찍이 한걸음 떨어졌더니 익숙한 모양새가 눈에 들어온다. 자세히 보니 '해밀'이라 쓰여 있는 우리 한글이다.

정민세 작가는 도자기의 고장이자, 세종대왕이 영면한 영릉이 있는 여주에서 '한글'을 활용해 작품 활동을 하는 도예가다. 이처럼 정 작가에게 '한글'과 '세종'은 특별했다.

“어려서부터 쓰고 그리는 것을 좋아했어요. 특히 한글이 가진 조형성이라던가 직관적으로 표현하는 시각적인 효과들에 관심을 갖게 됐죠. 이런 요소들을 제가 하는 도예 작업과 접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이 한글이 가진 변화무쌍한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된 계기가 됐죠.”

그의 작품에는 주로 인상적인 노래 가사나 시 구절이 등장한다. 때론 정 작가 스스로 글귀를 창작해 내기도 했다. 이런 무한한 변신을 보여주는 한글을 고스란히 도자기에 입혔다.

“처음엔 기억에 남는 노래 가사 말이나 시의 구절을 기억해 뒀다가 캘리그라피로 작업했었죠. 한글 자체가 이미 디자인 요소가 다분하고 10%의 고민이 더해진다면 의도한 바를 담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왔죠. 이를 다양한 예술 형태로 시도해보려 이리저리 고민해보고 있습니다.”

'늘 건강하고 문득문득 행복해라' 그가 작업할 때 많이 쓰이는 문장이자 가장 좋아하는 문구다. 요즘 같은 때 툭 던진 짧은 한마디가 절절하게 와 닿는다.

“건강만큼 중요한 것도 없잖아요. 항상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과 지친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싶은 메시지가 없을까라는 생각에 또 항상 행복할 수는 없을 테니 그래도 한 번쯤은 문득문득 행복하라는 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정 작가에게 한글만큼이나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의미는 남다르다. 더욱이 세종대왕 릉이 있는 여주 지역에서 한글을 알리는 일에 힘을 보탤 수 있다는 것도 자부심이 들었다.

“솔직히 안타까운 마음이 커요. 세종대왕님이 잠들어 계신 여주지만 여주시민들조차 이렇다 할 자부심을 갖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네요. 영릉이라는 훌륭한 문화자원이 있는 여주시가 더욱 활성화됐으면 좋겠습니다. 또 도예 문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주는 예로부터 질 좋은 흙으로 도자기가 발달한 지역이지요. 거기에 남한강을 끼고 있어 도자기를 만들어 나르기도 충분했고요. 그런데 현재는 사양 사업으로 전락하면서 전통 맥이 흐려지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이 여주의 100년 도자기 역사가 일으켜 세워지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던 세상을 보이게 하셨다

우리 한글 자음과 모음을 얼키설키 엮었더니 애정 가득한 연인 한 쌍이 탄생한다. 엎드려 있는 강아지인가 싶어 자세히 들여다본 순간 우리 한글인 걸 깨닫는다.

구리문화재단은 6월3일까지 구리아트홀 갤러리에서 15일 세종탄신을 맞아 '아리아리·한글예술'을 연다.

이번 전시에는 한글의 예술성과 세종대왕의 애민 정신을 알리는 데 앞장 서 온 한재준 서울여대 시각디자인과 교수가 참여했다. 한 교수는 문자 추상에 대한 흥미를 갖고 자음과 모음을 이미지화해 평면, 입체 조형물, 영상 작품 등을 선보이며 한글의 미적 요소를 극대화하기 위해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시도했다.

전시에서는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다양하게 조합해 응용이 가능하도록 한 디자인 문자 '씨알 한글'을 활용한 작품을 만나보고 직접 체험을 통해 작품을 만들어 볼 수도 있도록 하고 있다. 전시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창제 이후에 간행한 '훈민정음' 해례본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글의 아름다움과 구리에 얽힌 이야기를 함께 작품으로 구성하고 있다.

한 교수는 평소 한글의 예술적 가치와 우수성을 알리는데 애써온 인물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그는 한글로 만든 예술 작품을 선보인다.

“한글은 이미 철학과 예술성이 담긴 위대한 작품입니다. 많은 사람이 한글 사랑이나 자랑을 내세우면서도 아직도 한글과 한국어의 개념조차 헷갈려서 쓰고 있습니다. 한글의 참뜻을 알리고자 이번 전시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전시회 제목인 '아리아리·한글 예술'에서 아리아리는 '화이팅'이라는 의미가 담긴 순우리말이다. 이 전시는 지난해 12월 청주시립미술관에서 열렸던 '한글예술' 전시를 구리문화재단이 이번 세종대왕 탄신일을 맞아 가져오게 됐다. 응원의 메시지를 담아 우리 한글을 알리고 코로나로 지친 국민에게 위로를 전한다는 의미를 더했다.

“전시회 명칭에서 가운뎃점을 붙인 이유도 하늘 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외에도 생명, 사람, 하늘로 이어지는 길, 하늘로 들어가는 길 등 여러 철학적 요소를 바탕으로 이번 전시명을 정하게 됐습니다.”

이처럼 위대한 한글을 창제한 세종을 두고 한 교수는 한 시대의 임금이었을 뿐 아니라 작가로 또는 예술가로서 기억되고 존중되는 날이 오길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한 교수는 전시된 많은 작품 중에서도 '보이지 않던 세상을 보이게 하셨다'는 내용의 작품을 추천했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끝부분에서 용자례의 시작 페이지로 넘어가는 과정을 제 관점으로 해석한 작품입니다. 훈민정음 창제 이전의 세상과 창제 이후의 세상 변화를 짧은 글귀와 종이 한장 넘기는 연출로 표현한 작품이지요.”

한 교수는 이번 전시를 '일상의 예술'이라 한마디로 정의했다. 생각이 바뀌면 그 순간부터 누릴 수 있는 것이 예술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글 예술을 즐기게 되면 과학자 같은 예술가, 예술가 같은 과학자들이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직접 관람객들이 예술 작품을 만들어 볼 수 있도록 체험전시를 마련했습니다. 한글의 감동을 직접 전시장으로 오셔서 느껴보시길 기대합니다.”

 

#시민이 행복한 세상

여주세종문화재단은 세종대왕이 꿈꾸던 생생지락(生生之樂, 백성이 행복하게 산다)을 실현하고자 지난 2017년 세워진 문화예술기관이다. 시민들에게 보다 나은 문화예술 서비스를 제공하고 지역 문화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체계적으로 지원해 문화복지 실현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여주 지역 내 마을 문화기반시설이나 문화거점에서 실행할 수 있는 예술활동을 지원하는 '우리 동네 문화예술 프로젝트' 등 시민문화예술활동아리, 아마추어 예술단체 등에 적극적인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다. 여주 지역 내 문화예술인 및 단체의 역량, 예술성·전문성 강화 프로그램 등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 밖에 여주 지역 문화 활성화를 위한 전시, 공연, 축제 등에 거점 역할을 도맡고 있다. 특히 세종의 일대기를 그린 뮤지컬 '세종,1446'이 큰 성과를 거두면서 여주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문화콘텐츠로 자리하게 됐다. 뮤지컬 '세종,1446'은 초연 당시 세종의 한글 창제 고뇌와 아픔, 문민 사상을 잘 녹여내 호평을 얻으면서 전국 각지 무대에 서게 됐다. 또 여주도자기축제 등 여주시 문화 전반에 걸쳐 시민들의 문화 향유를 위한 활동들을 적극적으로 펼쳐가고 있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