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자기혐오·불안 시달린 안데르센
'그림자' 통해 세상의 추악함 알고도
선·아름다움 담은 글 써온 본인 그려
▲ 그림자,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배수아 옮김, 그림 고정순, 길벗어린이, 68쪽, 1만7000원
▲ 그림자,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배수아 옮김, 그림 고정순, 길벗어린이, 68쪽, 1만7000원

한 학자가 북쪽의 고향을 떠나 남쪽 땅으로 여행을 떠난다. 낯선 분위기에 어울리지 못하고 힘겹게 지내던 학자는 우연한 일로 자신의 그림자와 완전히 떨어진다. 이후 자유의 몸으로 온 세상의 비밀을 모두 알게 된 그림자는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학자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이 되어 그를 다시 찾아온다. 오랜 시간 학문에만 몰두하느라 존재감을 잃은 학자는 그림자의 설득에 마지못해 함께 여행을 떠나는데, 여행하며 그림자는 주인이 되고 학자는 그림자의 그림자로 전락하고 만다.

덴마크 동화작가로 눈부신 성공을 거둔 안데르센은 늘 자기혐오와 불안에 시달렸고 겉모습과는 다른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고 싶다는 생각에 괴로워했다. 어릴 적 상처받은 자신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는 이야기 <미운 오리 새끼>, 끝내 이룰 수 없었던 사랑의 애틋함과 슬픔을 담은 <인어공주>와 같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로 만들며 평생 진짜 자아를 찾는 여행을 했다.

그중에서도 <그림자>는 안데르센의 이러한 고민이 가장 대담하고 솔직하게 드러난 작품이다. 책 속 주인공 학자는 “당신은 세상을 잘 몰라요. 내 그림자가 되어 여행을 떠나는 게 어때요?”라는 그림자의 섬뜩한 제안을 받아들이며 돌이킬 수 없는, 끝없는 파멸에 이른다.

안데르센은 <그림자>에서 그토록 경계했던 위선이 자기 안에서도 조금씩 자라나고 있었음을, 그리고 그 사실을 한동안 외면해 왔음을 고백한다. 어릴 적부터 배우를 꿈꿨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에 맞춰 그것을 숨겨야만 했으며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상상할 수 없이 추악한 장면들을 알고 있지만 세상의 선함과 아름다움에 관한 책을 쓰고 있는, 바로 자신이 <그림자> 속 학자이면서도 그림자이기도 하다는 것을 말이다.

인간과 그림자의 지위가 뒤바뀌는 무섭고도 강렬한 이야기 <그림자>는 우리가 그동안 몰랐던 진짜 안데르센의 모습은 물론 우리 자신의 그림자까지도 마주하게 할 것이다.

/장지혜 기자 jjh@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