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길고 고단했던 인간 삶의 마지막을 완성하는 과정이다. 누구라도 존엄을 유지하는 상황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자본의 위력은 죽음 앞에서 더욱 냉혹하다. 장례절차마다 매겨진 가격이 다르고 대우가 다르다. 가장 극단적인 사례도 있는데 시신마저 처리하기 어려운 경우다. 바로 무연고자들의 죽음이 그렇다.

연고자가 없거나 알 수 없는 경우, 또는 연고자가 있어도 시신 인수를 기피하거나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형태의 무연고자들의 죽음이 매년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의하면 지난해 경기도 무연고 시신은 658구였다. 이 중 470구는 가족들이 인수를 거부했거나 기피한 경우에 해당한다. 지난 2015년 전국적으로 1676명이었던 무연고자의 시신은 2020년에는 2947명으로 늘었다. 역시 이 가운데 약 70%가량은 연고자가 있어도 시신 인수를 기피했거나 거부한 경우에 해당한다.

연고자가 시신 인수를 기피하는 경우는 핵가족화로 인한 가족관계의 단절이 대표적이다. 장례비 부담이 원인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현행법하에서는 연고자가 시신 인수를 기피했을 경우 생전에 친분이 있거나 혹은 종교단체 등에서 시신을 인수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현행법상 연고자는 배우자와 자녀, 부모 등 가족관계로만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무연고자의 시신은 결국 지자체 몫이 된다. 그러나 장례절차나 장례비 등을 지원하는 지자체들의 형편이나 규정 또한 천차만별이다.

인간의 죽음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후진성은 바로 이런 대목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후진적이기는 법률도 예외가 아니다. 1인 가구가 급증하고 비혼가구의 탄생으로 온 세상이 떠들썩한데도 가족관계를 규정하는 우리 민법 조항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다. 이번에 김승원 의원이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고인이 사망하기 전까지 친분을 맺은 사람과 종교활동 및 사회적 연대활동 등을 함께 한 사람이 장례를 치를 수 있게 하고, 비용을 지불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늦었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존엄한 죽음을 맞을 권리, 설사 무연고라 하더라도 그 최소한의 품위는 보장돼야 마땅하다.

/인천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