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북부 바스크 지방의 빌바오를 처음 찾았던 해는 1973년이었다. 프랑스에서 언론사 특파원으로 일하고 있을 때 선친(汗翁 愼兌範 박사)의 회갑연을 당시로서는 쉽지 않았던 유럽 여행으로 마련해 드리기로 아우들과 합의했었다. 파리에 오신 선친께서는 유럽에 오셔서 하고 싶으신 것을 노트에 꼼꼼하게 적어 오셨는데 그중에는 앙굴라(Angula) 시식(試食)이라는 대목도 있었다.

▶앙굴라는 스페인어로 새끼 뱀장어로 미식(美食)의 나라 스페인에서도 가장 귀하고 값비싼 요리로 알려져 있었다. 인터넷 정보가 없던 시절이어서 요리 가이드 책과 미쉐린 등을 찾아보니 빌바오가 대표적인 앙굴라 명산지였다. 주말에 파리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여 900㎞를 달려서 저녁시간에 빌바오에 도착했다. 예약한 레스토랑에 가서 앙굴라를 포함해 저녁식사를 주문했더니 주인 셰프가 오더니 일본에서 온 사람으로 생각하고 일본말로 인사를 해왔다.

▶당시 유럽을 여행하는 동양인은 일본인들이 유일했기에 도쿄를 몇 차례 다녀왔다는 셰프가 우리를 일본인으로 생각한 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며칠 전 한국에서 파리에 오신 아버님께서 앙굴라를 드시고 싶다고 해서 오늘 새벽에 파리에서 출발해 방금 도착했다니까 크게 놀란 주인 셰프는 아버님이 드시는 앙굴라와 포도주는 자신이 대접하겠다고 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저녁시간이 되었다. 빌바오 일대의 하천에 올라오는 뱀장어 새끼를 잡아 마늘 같은 양념과 함께 기름에 약간 볶아서 내놓은 앙굴라는 당시도 비싼 요리였지만 요즘은 1kg에 2000유로(280만원)라니까 한 접시에 50g이면 원료값만도 14만원이 되는 고가다.

▶빌바오는 15세기 이래 주변에 철광석이 많은 항구도시여서 제철공장과 조선소가 즐비했던 스페인의 대표적인 공업도시였다. 그러나 철강 및 조선공업이 일본과 한국 등 신흥공업국과의 경쟁에서 뒤져 폐허가 된 도시로 보였다. 다음날 선친을 모시고 바스크 지방의 또 다른 도시인 산세바스티안, 비아릿츠, 생-장-피에-드-포르 등을 거쳐 파리로 귀환했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2003년도 FIFA 월드컵 대회가 끝난 다음해 뜻이 맞는 친지들과 신축 개관한 구겐하임 미술관을 보기위해 빌바오를 찾았다.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빌바오를 살리는 것은 문화산업이라고 판단한 지방 정부가 1991년 1억 달러를 내고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하고 설계를 세계적인 건축가 프랑크 게리에게 맡겼다. 비행기 제조용 티타늄으로 초현대식 건물의 미술관이 빌바오를 활기찬 도시로 만들고 있었다. 92세로 빌바오를 되살린 건축가가 된 프랑크 게리는 최근 뉴욕 타임스와의 회견에서 “일하는 것이 즐겁고 사회정의를 위한 건축을 계속 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신용석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