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구 장수동엔 우리나라 최초 영세자인 이승훈(李承薰·1756~1801) 묘역이 있다. 그는 1783년 중국 베이징에서 국내 처음으로 세례를 받았다. 중국에서 돌아온 뒤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는 등 교회 주역으로 활동하다가 1801년 신유박해 때 참수돼 순교했다. 그의 아들과 손자, 증손자 등 4대에 걸쳐 5명의 순교자가 나온 집안은 유례를 찾을 수 없다. 세계 가톨릭사에서도 특별한 역사로 평가된다. 인천시는 2011년 이승훈 묘역을 시 지정 기념물 제63호로 지정·관리하고 있는데, 지난해 9월엔 묘역 주변을 역사공원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시는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묘역 일대(4만8032㎡)에 지상 1층 연면적 1363㎡ 규모로 한국 천주교 역사문화체험관을 조성할 계획이다. 체험관엔 천주교 역사문화 기록물 안내관, 이승훈과 그의 가계도 안내관, 수장고, 3D 입체모형 등이 들어선다. 이승훈 묘와 체험관을 둘러싼 공원용지엔 산책로와 쉼터, 안내·편의시설 등을 갖춘다. 2022년까지 사업비 125억원을 투입한다. 시는 역사공원을 국내 순례 관광명소로 키워 관광산업과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한편, 시민들에겐 휴식 공간을 제공하기로 했다.

이처럼 인천은 국내 천주교 역사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중심축을 차지한다. 1883년 개항 전에도 인천은 국내 천주교 유입의 거점이기도 했다. 박해 시기 선교사들의 중요한 입국로였다. 천주교 전파를 위해 조선으로 향한 선교사는 대부분 인천을 통해 한반도에 첫발을 내디뎠다. 인천 곳곳에 천주교 신앙 공동체를 만들기도 했다. 1795년 국내에 들어온 최초 선교사 중국인 주문모(周文謨) 신부를 비롯해 우리나라에 첫 대규모 선교단을 파견한 '파리외방전교회' 사제단 등이 그들이다. 이렇듯 인천은 천주교와 관련한 역사적 인물과 장소를 어디보다 많이 간직한 도시다.

인천 천주교 역사와 유물을 집대성한 '인천교구 역사관'이 지난 3월17일 문을 열었다. 역사관은 1800년대 초부터 인천시민들과 함께한 천주교 발자취를 알린다. 인천의 첫 천주교 성당인 답동성당 내 옛 주교관을 개조해 꾸렸다. 신자들에겐 인천교구 뿌리를 알고 신앙을 다지는 배움터이자 안식처다. 역사관엔 역대 교구장 주교들이 사용했던 책상과 침대, 본당 세례 대장과 공동체 회의록, 천주교 고도서와 희귀본 등 세월의 흔적을 품은 유물이 고스란히 보존됐다. 아울러 장면 박사 일가 아버지이자 인천교구 초석을 다졌던 태암 장기빈 선생 유품 전시실인 '태암관'도 마련해 눈길을 끈다.

국내 천주교 신자수는 510만여명(인천 43만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소중한 신앙의 순간들이 모여 이뤄낸 결과다. 오늘은 조용한 듯하지만, 과거 군부독재 시절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위해 항거했던 천주교를 기억한다. 역사관 건립은 옛 시간을 되짚어 보는 일이기도 하지만, 부끄러웠던 과거 역사를 기억함으로써 현재 우리 모습을 생각하게 한다. 이곳을 찾는 이들이 그런 '시간여행'을 하면서 하늘의 뜻을 새기길 기도한다.

 

/이문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