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끔 집안에 놓아둔 다양한 곡물에서 벌레를 발견하곤 한다. 이러한 곤충 가운데 가장 흔히 보이는 종이 나비목 명나방과에 속하는 '화랑곡나방'이다. 집안에는 각종 곡물 이외에도 초콜릿, 과자, 견과류 등 화랑곡나방 애벌레의 먹이가 될 만한 것들이 많아서 먹을 것을 담아둔 용기의 입구를 잘 막아두지 않으면 금세 벌레가 발생한다.

화랑곡나방의 애벌레는 강력한 턱으로 과자나 라면의 포장재를 뚫고 안으로 침입하는 특성이 있어서 식품회사나 마켓에서도 화랑곡나방의 해충 방제에 골머리를 앓는다.

화랑곡나방과 유사한 해충으로 꿀벌부채명나방이 있는데 이 종류는 꿀벌의 벌집을 엉망으로 만드는 해충이며 오래 전부터 양봉업계에서 악명이 높다.

2017년 스페인의 한 과학자가 벌집에서 발생한 꿀벌부채명나방의 애벌레를 우연히 비닐봉지 안에 담아 두었는데, 봉지에 여러 개의 구멍이 뚫린 것을 발견한 것이 곤충으로부터 비닐과 같은 플라스틱의 분해 가능성을 찾는 연구의 계기가 되었다.

연구진은 꿀벌의 벌집을 이루는 밀랍의 화학적 구조가 폴리에틸렌 비닐과 비슷하여 애벌레가 비닐봉지를 분해할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이다. 실제로 애벌레가 먹은 플라스틱은 스스로 소화하는 것이 아니라 애벌레의 장내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국내 연구진들이 장내 미생물이 제거된 꿀벌부채명나방의 애벌레에도 플라스틱 분해 능력이 있음을 밝혀냈고, 범위를 넓혀 곤충의 장내에서 분비되는 효소가 폴리에틸렌 성분을 분해하는 효과가 있는 것을 확인해 이에 대한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우리나라 산이나 강가에 버려진 플라스틱은 환경오염의 주된 원인이다. 완전히 분해되는 데에는 수백 년이 걸리지만 아직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플라스틱 제품은 편의성으로 인해 사용량이 날로 늘어나고 있지만 플라스틱 제품 사용을 줄이거나 재활용을 위한 여러 가지 정책도 근본적인 방안이 되기는 어렵다.

환경부 소속 국립생물자원관은 2019년부터 꿀벌부채명나방뿐만 아니라 다른 자생생물에서 플라스틱 분해 가능 물질을 탐색하는 연구를 수행해오고 있다. 또한 화랑곡나방 애벌레 연구와 함께 딱정벌레목 거저리과에 속하는 갈색거저리의 플라스틱 분해 능력을 실험하고 있다. 이를 위해 현재 화랑곡나방 장내 미생물로부터 분해 유전자 정보를 수집해 그 특성을 분석하는 연구를 지속하고 있으며, 화랑곡나방 이외에도 다른 곤충들의 플라스틱 분해 능력을 탐색해 나가고 있다.

곤충이 우리나라 산천의 폐플라스틱을 자연으로 되돌릴 날을 기대해 본다.

 

/배연재 국립생물자원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