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은 짜장면의 '원조(元祖)'다. 원조는 어떤 일을 처음으로 시작한 이를 일컫는다. 대개 음식점에서 쓴다. 요즘엔 원조가 워낙 난립해 찾는 데 어렵다. 진실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나치기도 한다. 그런데 '원조가 인천이다'란 말엔 지역 전체가 들어 있어, 대부분 그 사실을 믿는다. 아무튼 짜장면의 본산지는 인천이다.

짜장면은 오늘날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즐길 수 있지만, 과거엔 맘대로 먹기 부담스러웠다. 졸업식·입학식·생일 등 특별한 날에 주로 먹었다. 가격이 만만치 않아, 일반 서민들에겐 쉽게 다가가기 힘들었다. 지금이야 먹고 싶으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지만, 한때는 그렇지 못했다는 얘기다. 현재 전국에서 하루에 팔리는 짜장면이 200만 그릇을 넘는다고 하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이런 짜장면이 어떻게 인천에서 만들어졌을까. 처음엔 개항(1883년) 이후 인천과 가까운 산둥성에서 몰려온 중국인 노동자들이 그 대상이었다고 전해진다. 이들은 인천항 인근(현 차이나타운)에 화교 공동체를 이루었고, 본디 산둥성 가정식이었던 작장면(炸醬麵)을 이들에게 팔았다. 정식으로 짜장면이란 이름으로 음식을 팔기 시작한 곳은 1905년 개업한 공화춘(共和春). 그렇지만 이전에 이미 차이나타운 일대 여러 식당에서 짜장면을 판매했다. 그 후 공화춘 짜장면이 유명해 원조처럼 알려졌다고 한다. 따라서 누가 정말 원조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게 맞을 듯싶다. 공화춘은 상류 계층이 출입하던 고급 음식점이었다. 당시 청요릿집으로 아주 번창했을 정도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공화춘 성업에 중화루와 동흥루 등이 잇따라 문을 열었고, 인천은 점차 '청요리의 본산'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그 무렵 정통 중국요리를 맛보려고 경향 각지의 미식가들이 인천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짜장면은 국내 표기법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대중들은 짜장면이라 불렀으나, 표준어는 '자장면'만 바른 표현으로 규정했다. 그래서 국민들 사이엔 이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을 통해 표준어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국립국어원은 2011년 8월31일 짜장면도 표준어로 인정했다.

중구 차이나타운 모퉁이엔 '짜장면박물관'이 있다. 짜장면 역사·문화·이야기 등을 풀어놓는다. 박물관은 짜장면을 인천에서 개발해 판매한 '공화춘' 건물을 그대로 활용했다. 2012년 4월28일 문을 열었다. 그동안 20만여명의 국내·외 방문객이 다녀갔다고 한다. 주말이면 수도권 가족 관람객들이 차이나타운에서 중국 음식을 먹고, 월미도·한중문화관·인천개항장근대건축전시관·인천개항박물관 등도 둘러본다.

'차이나타운에서 짜장면만 먹고 가는 사람은 하수'란 말이 있듯, 방문객들은 개항장을 돌아보길 권한다. 인천 개항장이 국내 최초 스마트관광도시, 한국관광의 별 본상 수상 등 문화관광 상징으로 떠오르는 만큼, 찾는 이들이 소통하고 공유하는 공간으로 두루 자리매김했으면 싶다.

 

/이문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