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세상 될 때까지 행동하겠다”

 

▲ 13일 수원시 행궁동 한 주택에서 시민 5명이 세월호를 이야기하기 위한 모임을 갖고 있다. 이들 모임으로 기억과 희망을 다졌다.
▲ 13일 수원시 행궁동 한 주택에서 시민 5명이 세월호를 이야기하기 위한 모임을 갖고 있다. 이들 모임으로 기억과 희망을 다졌다.

 

“어둡고 험한 길이지만, 우리는 그들과 사회를 위해 제자리에서 역할을 합시다.”

13일 오후 8시 수원시 행궁동의 한 가정집. 탁자를 가운데 두고 둘러앉은 여성 5명이 돌아가며 내 이야기, 생각을 꺼낸다. 매 한마디 한마디가 무겁고 무섭다. 속은 복잡하다.

주제는 '세월호', 그리고 '기억'. 평범한 어머니들은 왜 모여 그날의 아픔을 되짚었나.

앞서 시민사회단체와 수원시는 시민이 직접 펴낸 세월호 활동 등 기록집 <수원4.16운동을 기록하다_그날 이후 멈추지 않았다>를 읽고 의견을 나누고자 하는 모임에 제공했다. 모임은 코로나19를 감안해 마스크 착용 등 방역수칙을 준수해야 한다.

우연한 기회였다. 변하지 않는 현실과 주변의 눈치에 지쳐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지 못한, 그러나 적어도 희망은 있다고 믿고 계속 함께하고 싶은 시민들에게는 그랬다.

“우리, 세월호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말해봅시다.”

하지만 다짐과 달리, 첫 질문의 답부터 입을 떼기 어렵다.

긴 한숨을 내쉰 이정원(53)씨는 “우리 딸에게 전화 와서 '티비를 봐, 애들이 있는 배가 가라앉고 있다. 죽어가고 있다'며 막 울었다”며 “딸은 그때부터 티비만 보면 울다가 '이 나라가 싫다'며 4학년 1학기인데 졸업 안 하고 호주로 떠났다. 우리 딸만 그랬겠냐”고 말했다.

이씨의 딸은 여전히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이 없다고 한다.

이어 김진하(35)씨는 “4월10일 출산한 아이가 아파서 중환자실에 있었다. 산후조리원에서 너무 힘들게 있는데 세월호가 겹치면서 일주일 내내 울기만 했다. 그 상황을 인정하기 너무 싫었다”고 했다.

구조될 것처럼 보였다가 배가 가라앉은 절망적인 트라우마는 지금까지도 생생히 남아 통증을 주고 있었다.

김향미(49)씨는 “당시 수원은 전국 최초로 시민이 모금 운동을 벌여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추진했다. 관련해 4월16일 관광버스로 서울 수요시위에 가고 있다가 티비로 사건을 접했다”며 “구했다고 해서 다들 박수치고 그랬는데 나중에 난리였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지원단체인 '수원평화나비' 공동대표이다.

이정원, 김진하씨도 “구조됐다고 했는데 아니었다”며 가슴을 쳤다.

“우리도 이 정도인데 유가족들은 어떻겠어. 자꾸 7년이 지났다고 하는데 전쟁 피해자도 해방이 됐으나 그들의 고통은 해방이 되지 않은 거야. 뭐 하나 해결한 게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김향미씨가 손가락으로 탁자에 놓인 책의 한 페이지를 문지르며 이처럼 말했다. 책에는 숫자 '0'이 커다랗게 그려져 있다.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등 시간이 멈춰져 있다는 의미다.

시민이 체감하는 불신도 고스란히 볼 수 있었다.

“정부에서 기록(4월16일 대통령 7시간 행적 등)을 왜 공개하지 않을까. 30년 동안 못 보도록 봉인돼있다던데 감추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예전에 시민들의 요구가 굉장히 컸음에도 정치권은 왜 움직이지 않는가. 언론도 반성해야 한다.”

결국, 이들의 공감대는 '대책'과 '다짐'으로 향했다.

김진하씨는 “대구 지하철 참사 등 사례가 있지만, 세월호 참사 피해자는 트라우마로 힘든 날을 보낼 수밖에 없다. 피해자가 힘을 다시 얻고 살아갈 수 있도록 치료 등을 나라가 당연히 도와야 하고, 시민들이 도와줄 부분은 없는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김향미씨는 “책에는 '무엇이 잘못됐는지, 어떻게 바로잡았는지에 대해 지금의 아이들에게 그리고 다음 세대들에게 알려줘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고 생각한다'는 시민의 말이 적혀있다. 이것이 우리들의 역할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약 2시간을 좌담한 이들은 다시 한 번 용기를 품었다.

“실질적으로 뭔가 변하는 것이 없어 힘들고 '이제 그만하라'는 사람들의 말에 우리도 어쩌면 잊으려 한 것이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모임을 통해 그래. 이렇게라도 하자. 작지만 이 역할이라도 하자. 다시 기억하고 이야기해보자고 되뇐다. 멈추지 않겠다.”

'적어도 잊지 않으면 희망'은 있다는 이들, 각각 기록집을 들고 97페이지에 적힌 문장을 힘차게 외친다.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진실을 밝히는 일에 동참하겠습니다. 돈보다 생명이 소중하다고 가르치겠습니다. 안전한 세상이 될 때까지 함께 행동하겠습니다. 이웃에게 알리고 손잡고 가겠습니다.”

한편 다양한 시민들이 책을 읽은 소감 등은 오는 17일 시와 시민단체가 수원시 유튜브 채널의 온라인 북콘서트에서 소개할 예정이다.

/글·사진 김현우 기자·이따끔 인턴기자

kimhw@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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