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땀 한땀 희망으로 '노란리본' 이으면 지구 한 바퀴 되겠죠

“2학년 7반 인배 엄마에요”
자녀 이름으로 서로 부르는 엄마들
공방서 작업하며 아픔 보듬어

이젠 웬만한 것 바느질로 다 만들어
내친 김에 자격증 따고 클래스 운영

자수·퀼트·브로치 만들어 판 수익금
사회공헌 활동과 진상규명에 사용

김광미씨 '애착 신발' 등 6작품 포함
공방 엄마들, 안산서 내달 전시회
▲ 4·16공방 상징 간판
▲ 4·16공방 상징 간판

'드르럭 드르럭' 쉴 새 없는 미싱이 돌아가고 한쪽에선 바느질 꿰기에 여념 없다. 작업대 위로 수북이 쌓인 퀼트 인형에도 눈길이 간다. “올해가 소띠 해라 소 인형을 만든 거에요” 세월호 7주기를 앞두고 밀려드는 주문량에 4·16 공방은 간만에 화색이 돈다.

그늘진 엄마들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어난다. 이야기하면서도 손은 쉬지 않고 인형을 만든다. '4·16 공방'은 세월호 엄마들이 모여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나누기 위해 만든 공간이다.

엄마들은 공방에서 소리높여 울기도 하고 지치거나 힘들 때 마음껏 속 얘기를 털어놓기도 하며 시간을 보낸다.

▲ 4·16 공방 김광미씨가 자신의 퀼트 작품 별헤는 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제공=4·16공방
▲ 4·16 공방 김광미씨가 자신의 퀼트 작품 별헤는 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제공=4·16공방

공방 엄마들이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산 세월 7년, 김광미(54)씨를 처음 만난 그 날도 '2학년7반 인배 엄마예요'라는 말로 자신을 소개했다. 공방 엄마들은 서로를 자녀의 이름으로 부른다고 했다.

“엄마들과는 분향소에서 처음 인연을 맺게 됐죠. 서로 의지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마음을 터놓는 사이가 됐죠. 그래도 여전히 호칭은 누구누구 엄마가 편하더라고요. 엄마들과 처음 만나 한 일은 노란리본을 만드는 일이었죠. 한시라도 빨리 아이들이 돌아왔으면 하는 마음에서 만들기 시작한 노란리본은 이제 세월호의 상징과도 같은 의미가 됐죠. 아마 공방에서 처음 만들어진 제품이 이 바로 노란리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노란리본 달기 캠페인은 범국민적인 운동으로 퍼져나갔다. 2014년부터 지금까지 4·16공방을 비롯한 많은 시민단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노란리본이 만들어졌다.

“만들어진 노란리본만 해도 지구 한 바퀴는 돌 수 있지 않을까요? 그만큼 많은 국민께서 세월호에 관심을 가져주셨고 지금까지도 종종 보이는 노란리본에 감사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김씨는 집에 홀로 남아있는 시간이 괴로워 무작정 공방으로 향했다. 한땀 한땀 바느질에 집중하는 동안 괴로운 기억을 잊을 수 있었다. 리본 만들기로 시작했던 작업은 브로치를 만들거나 파우치며 가방 등 바늘과 실만 주어진다면 못 만드는 것이 없을 수준에 이르렀다.

“그만큼 괴로웠던 건지 힘들 때마다 공방을 찾아 작업을 하다 보니 실력이 늘더라고요. 바느질로 만드는 웬만한 것들은 거뜬히 만들어 낼 만큼 실력이 늘었죠. 내친김에 강사 자격증도 땄고 지금은 퀼트나 자수 등 클래스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 시민들이 세월호를 기억하는 팔찌를 손목에 착용한 채 손을 모으고 있다.(코로나 이전)
▲ 시민들이 세월호를 기억하는 팔찌를 손목에 착용한 채 손을 모으고 있다.(코로나 이전)
▲ 한 어린이가 4·16공방 소품만들기 (코로나 이전)에 참여하고 있다.
▲ 한 어린이가 4·16공방 소품만들기 (코로나 이전)에 참여하고 있다.
▲ 4·16공방 김광미씨의 퀼트 작품, 애착신발
▲ 4·16공방 김광미씨의 퀼트 작품, 애착신발

4·16 공방에서는 자수, 퀼트, 브로치, 천연화장품 등 엄마들이 만든 갖가지 수공예 소품들의 판매가 이뤄지고 있다. 판매를 통해 얻은 수익금은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사회공헌 활동과 세월호 진상규명에 쓰인다.

“코로나 이전에는 장터를 열고 직접 판매하거나 경기도 나눔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여기서 얻어지는 수익금의 일부는 지역의 불우이웃에게 쓰였죠. 또 해마다 유가족분들과 연탄나눔 활동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저희가 국민들로부터 받은 사랑과 관심을 이제는 돌려드려야 한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지요.”

한 두해,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들은 안정을 찾아갔다. 늘 어둠이 드리운 얼굴에도 농담을 주고받을 만큼 밝은 웃음도 볼 수 있었다. 공방 엄마들에게 7번째 봄이 찾아왔다. 여전히 시린 봄 일테지만 슬픔을 잊기 위해 갈고 닦은 바느질 솜씨를 보여줄 전시가 5월, 안산 경기도미술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비로소 7년 만에 '인배 엄마'가 아닌 퀼트 작가 '김광미'로 전시 무대에 서게 되는 순간이다.

“그동안 공방 엄마들이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며 만들어 온 퀼트 작품을 한데 모아 전시를 열기로 했어요. '퀼트로 이야기를 잇다'라는 이름의 전시인데 밤낮없는 진상규명 활동으로 부족한 시간 속에서도 정성껏 준비한 전시입니다.”

▲ 김광미씨 작품 별헤는밤
▲ 김광미씨 작품 별헤는밤

김씨는 이번 퀼트 전시에서 인배와의 추억이 담긴 '별 헤는 밤', '인배가 타던 자전거', '인배와 함께 사는 궁궐처럼 멋진 집', '애착 신발' 등 6 작품을 선보인다.

“별 헤는 밤은 인배와 시골에 가서 밤하늘을 바라보며 별자리를 찾던 생각이 나서 만든 작품이에요. 애착 신발이라는 작품은 신발장을 정리하다 문득 생각이 났어요. 좋은 곳에 갈 때만 신었던 신발이 있었는데 그날도 그 신발을 신고 갔거든요. 사실 세월호 때 우리 아이 물건은 아무것도 나온 것이 없어요. 유독 그 신발이 생각나서 이렇게나마 퀼트로 표현해 봤습니다.”

▲ 4·16공방에서 만든 가방
▲ 4·16공방에서 만든 가방

누군가 말했다.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고. 혹독했던 7년 속에 엄마들은 단단해졌고 이제는 조금씩 조금씩 조여오던 숨통을 트여가는 중이다.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고난이나 역경은 반드시 극복할 수 있어요. 많은 분이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 모두가 편하고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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