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실장

지난 해 어느날 차 안에서 라디오를 듣다가 실소를 금치 못한 적이 있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뉴스 프로 앵커의 '동학개미'에 관한 멘트였다. 동학농민혁명에 빗대 동학개미운동이라 하는 것까지는 넘어갈 만 했다. 칭송이 점점 과해지더니 외환위기 때의 금모으기 운동에까지 갖다붙였다. 아이들 돌반지까지 내놓았던 금모으기 운동은 그야말로 범국민적 국난극복운동이었다. 제 수익만을 쫓는 각개전투식 투자를 굳이 '애국'으로 포장할 것 까지야.

▶하느님도 모른다는 주식시장에는 이따끔 대폭락의 패닉이 덮친다. 세계경제 대공황기이던 1929년 10월28일 뉴욕 증시가 12.6%나 빠졌다. 1987년 10월19일의 뉴욕 증시도 개장 초반부터 팔자 주문이 쏟아지면서 22.6% 폭락했다. 이른바 '블랙 먼데이'다. 한국 증시에도 여러번 있었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가 대표적이다. 장세가 '파랗게 질렸다'고들 했다.

▶2001년 미국 9·11 사태 때는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증시가 일순간 파랗게 질렸다. 그러나 당초 예상보다 더 빨리 회복세로 돌아섰다. 주식 시장에서의 '학습 효과' 때문이다. 극도의 비관 장세가 곧 그만큼의 낙관 장세로 바뀌는 것이다. 서울의 어느 회사에 전해오는 일화가 있다. 외환위기 때 많은 직원들이 강제 명퇴를 당했다. 이들 중 몇몇은 홧김에 퇴직금을 당시 반토막 나있던 주식에 올인했다. 머지않아 벤처 붐이 터지면서 명퇴자가 옛 직장을 찾아 후배들에 술을 샀다는 사연이다.

▶코로나19 시대의 동학개미도 이런 학습 효과의 산물이다. 작년 1월 첫 팬데믹이 시작되자 세계 경제가 올스톱되는 듯 했다. 먼저 외국인 투자자들이 삼성전자 등 한국 주식 떨이에 나섰다. 2000선을 넘던 코스피지수가 1430까지 주저앉았다. 곧 개인 투자자들이 쏟아지는 물량들을 쓸어담기 시작했다. 자주 오지 않을 기회로 포착한 것이다. 작년 1월20일 28조원이던 개미들의 고객예탁금이 3월 말에는 43조원으로 불어났다. 주식 투자자 수도 1년 새 300만명이나 늘었다. 한국만도 아니다. 이들을 일본에서는 '닌자개미', 미국에서는 '로빈후드'라 부른다.

▶결과적으로 동학개미들이 시장을 떠받친 셈이 되자 목소리도 커졌다. 먼저 한시적이었던 공매도 금지 조치를 풀지 말 것을 금융당국에 요구했다. 선거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들 요구가 받아들여졌다. 주총 시즌을 맞아서는 배당금 증액을 요구, 기업들을 떨게 했다. 이번엔 국민연금이다. 정해진 자산운용 매뉴얼에 따른 주식 매도를 공격하고 나선 것이다. “국민연금은 동학개미를 총알받이로 쓰지 말라”고 했다. 지난 주 결국 국민연금이 한 발 물러섰다. 국민의 노후자금이 동학개미에 저당잡히게 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동학이든 서학이든, 투자는 투자일 뿐이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지경까지는 가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기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