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지배하기 전 저항의 손을 들어주십시오
얀나잉툰 민주주의민족동맹(NLD) 한국지부장이 저항의 상징인 ‘세 손가락 경례’를 하고 있다. /이상훈 기자 photohecho@incheonilbo.com

아이, 어른 할 것 없었다. 뭉툭한 군화발은 민중들을 걷어차기 바빴고 장전된 총구는 연신 국민들의 눈을 겨눴다. 2021년 2월1일, 미얀마 군부독재 세력의 쿠데타는 8888항쟁으로 일컬어지는 지난 1988년 때 보다 더 지독했고 더 잔혹해졌다. 더는 물러날 곳은 없었다. 벼랑 끝에 몰린 민중들은 군부독재의 굴복 대신 차라리 죽음을 택하기로 했다.

 

#“이젠 끝장을 봐야 한다”

지난달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만난 얀나잉툰 민주주의민족동맹(NLD) 한국지부 회장과 소모뚜 민주주의 네트워크 공동대표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 미얀마 군부가 이들을 군 명예 훼손 혐의로 지명 수배를 내렸기 때문이다. 얀나잉툰 회장과 소모뚜 대표의 가족관계 등 신상이 미얀마 전역에 공표됐고 군부는 마치 이들을 역적으로 몰아갔다. 7일 인천 부평에서 인천일보가 만난 얀나잉툰 회장은 우려와 달리 덤덤한 모습이었다. 이런 일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군부에 대한 적개심만 쏟아 낼 뿐이었다.

“국가보안법상 위반이라는 이유로 국가의 명예를 실추했다며 저희를 지명 수배 명단에 올렸죠. 이번 일은 처음이 아닙니다. 고국에 민주화 운동에 동참하고 공무원들의 파업 지원을 했다는 것 때문에 이미 지명 수배 대상으로 지목된 상태죠. 이 같은 상황이 전혀 두렵지 않습니다. 저희는 다행히 한국이라는 안전한 나라의 비호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고국에 있는 가족들의 안부는 걱정되는 부분입니다. 현재는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연락하지 않고 있습니다.”

얀나잉툰 미얀마 민주주의민족동맹(NLD) 한국지부 회장의 하루는 24시간도 부족하다. 낮에는 민주화 운동에 쓰일 자금 마련을 위해 목재 공장에서 일을 하고 퇴근 후엔 각 언론 매체와 인터뷰를 하며 미얀마 군부 독재 세력의 악행을 알리는 데 힘 쓰고 있다. 휴일에도 그는 쉬지 않고 미얀마 대사관과 무관부 앞을 찾아 군부독재를 비판하고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습니다. 미얀마 국민은 죽을 각오로 이번 사태에 임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있는 2만5000명의 미얀마인들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고국의 민주화를 위해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이번에야말로 끝장을 봐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미얀마 군부 만행…국제연대 절실

얀나잉툰 회장은 지난 1988년 항쟁 당시에도 선봉에 섰다. 핍박과 수모를 견디다 못한 얀나잉툰은 1991년 한국에 왔고 7년 뒤인 1998년 민주주의민족동맹(NLD) 한국지부를 세웠다. 올해로 고국을 떠나온 지 30여 년이 흘렀지만 얀나잉툰은 여전히 달라지지 못한 모국의 현실에 좌절해야 했다.

“그때보다 지금이 더 잔인해졌습니다. 이게 과연 2021년이 맞나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약탈을 일삼고 폭력이나 살인은 일상이 된 지 오래입니다. 그들은 군대가 아닙니다. 강도, 살인집단, 반란군일뿐입니다.”

실제 미얀마 상황은 내전에 가까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군부독재에 견디다 못한 힘없는 국민들은 국경을 벗어나기도 했다. 얀나잉툰 회장은 차마 눈뜨고 지켜볼 수 없는 광경들이 현지에서 펼쳐지고 있다고 증언했다.

“어떤 명분이나 이유도 없이 폭행을 일삼습니다. 착취나 약탈 행위도 일상이 된 지 오래입니다. 외신 인터뷰에 나서 진실을 폭로한다거나 내부 사정을 발언하면 다음 날 시신으로 발견되는 일도 종종 있다는 보고도 받고 있습니다. 언론에 보도된 500여명의 사망자보다 훨씬 많은 밝혀지지 않은 국민들이 미얀마에서 죽임을 당하고 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얀나잉툰 회장은 국제사회의 도움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특히 중국이라는 거대 강국을 등에 업은 군부를 상대로 힘없는 민중들이 맞서 더 이상의 참극을 멈출 방법은 국제 연대의 힘을 빌리는 길이 유일하다고 강조했다.

“세계 각국의 지부에서 모인 지원금과 한국 국민께서 후원해주신 지원금 등을 민주화 운동에 쓰고는 있지만 중국, 러시아와 손을 맞잡고 있는 군부를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죠. 이렇게 언론에 지속적으로 내부 사정을 알리고 국제사회의 도움을 막연히 기다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또 현재 미얀마 공무원들을 상대로 불복종 시위 참여를 이끄는 것을 유일한 희망으로 보고 지속적인 지원금을 보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고맙습니다

오늘날 미얀마의 상황과 지난 5.18 당시 한국의 모습은 쌍둥이처럼 닮아있다. 그러나 80년대 각각 비슷한 시기에 민주화 항쟁이 일어났음에도 민주주의가 꽃을 피운 대한민국과 여전히 격동의 시대에 놓인 미얀마 사이의 간격은 쫓아갈 수 없을 만큼 벌어져 버렸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반드시 봄이 온다는 사실을…. 누군가의 희생이 헛되지 않음을…. 그래서였을까 국내에서는 세계 어느 국가보다 미얀마 사태에 관심을 가지고 지지를 보내고 있다.

“국민과 정부, 지방정부까지 나서 힘을 보태주는 전 세계 유일의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내 가족의 일 인 것처럼 나서 도와주고 있습니다. 금전적인 후원뿐 아니라 유튜브 영상을 통해 응원가를 직접 불러준다거나 위로의 메시지를 남겨주기도 합니다. 저는 물론 미얀마 국민들 모두가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있습니다. 이 전쟁이 끝나고 난 뒤엔 한국과 우린 아마 형제가 돼 있을 겁니다.”

얀나잉툰 회장이 머나먼 타지에 나와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을 이끌기까지 힘이 되어 준 사람은 국민 뿐만이 아니다. 그가 다니는 목재 회사인 한림우드 김진철 대표는 얀나잉툰 회장이 입사했던 2002년 당시부터 지금까지 그의 민주화 운동에 적극 지원하고 있다.

“저에겐 아버지 같은 분이시죠. 집회나 인터뷰가 많은 요즘 같은 때 근무 일정을 배려해 주시기도 하고 지원도 아끼지 않으십니다. 누구보다 미얀마의 민주화를 가장 바라시는 분이시기도 하죠.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꼭 전하고 싶습니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미얀마는?

미얀마는 아시아 서남부에 있는 연방국이다. 국민의 90%가 불교도이며 공용어는 미얀마어다. 1885년부터 1948년 초까지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사회주의 중앙 계획 경제체제를 택하고 있는 개발도상국으로 산업은 대부분 국영화되어 있으며 경제는 주로 농업과 무역에 기초를 두고 있다. 전체 면적 67만6578㎢에 인구는 지난해 말 현재 5404만5420명이다.

미얀마 일지

▲1885 = 미얀마, 영국의 식민지배.

▲1948 = 영연방으로부터 독립.

▲1962 = 네윈 육군총사령관, 쿠데타로 우누 총리 축출한 뒤 정권 장악.

▲1988 = 학생 중심 반정부 민주화 요구 시위 '양곤의 봄' 발생. 모친 간호 위해 귀국한 아웅 산 수치 여사 시위 전면에 나섬. 네윈 사임.

▲1988 = 소우 마웅 장군, 쿠데타 일으켜 집권, '버마 사회주의 계획당'(BSPP) 무너뜨리고 정권 장악. 쿠데타 이후 두 달간 시위 지속으로 3000여명 사망.

▲1989 =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지도자 아웅산 수치 여사와 틴 우 당총재 가택연금. 군부, ‘버마사회주의연방공화국’에서 ‘미얀마 연방’으로 변경.

▲ 1990 = NLD가 총선에서 전체 의석 82% 차지해 압승. 군정은 선거 결과 인정 거부.

▲ 1991 = 수치 여사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

▲ 2002 = 네윈 사망.

▲ 2003 = 킨윤 총리, 민주화 7단계 로드맵 발표.

▲ 2008 = 군사정부, 민주화 일정 발표. (2008.5 신헌법 국민투표, 2010 총선)

▲ 2010 = 집권 통합단결발전당(USDP) 총선 승리. 1주일 후 수치 여사 연금 해제.

▲ 2011 = 테인 세인 대통령 취임. 군정에서 명목상의 민간 정부로 권력 이양.

▲ 2012 = 보궐선거에서 NLD 45석 중 43석 석권. 수치 여사 당선.

▲ 2015 = 중앙정부-8개 반군단체, 전국적 휴전협정 체결.

▲ 2015 = 총선에서 NLD 전체 의석 59% 확보.

▲ 2016 = 문민정부 1기 출범. 수치 여사, 국가고문 겸 외무장관에 취임. 측근 틴 초가 대통령 취임.

▲ 2020 = 총선에서 NLD 전체 의석 59.6% 확보.

▲ 2021 = 군부, 총선 부정 의혹 조사 요구. 쿠데타 가능성 시사. 

▲ 2021.2.1 = 군부 쿠데타, 수치 고문 등 정부 고위 인사 구금과 1년간 비상사태 선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