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가 뒤틀어버린 역사,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1899년 9월18일 이튿날 독립신문
'인천 정차장 출발한 기차' 명기에도
1975년 9월18일 철도시발지 기념비
노량진에 세우고 46년간 오류 방치

1897년 3월22일 경인선 기공식 기념
1999년 9월18일 도원역 인근에 세운
한국 철도 최초 기공지' 새긴 기념비
정확한 기공장소서 서쪽 400m 설치
▲ 인천역사 앞 '한국철도 탄생역' 기념물.
▲ 인천역사 앞 '한국철도 탄생역' 기념물.

인천은 우리나라 철도의 최초 부설을 위해 1897년 3월22일 기공식을 연데 이어 1899년 9월18일 최초 기차가 출발한 곳이다.

한데 이 사실을 제대로 아는 이가 드물다. 기공과 시발을 기념하는 역사 조형물도 하나같이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엉뚱한 곳에 가 있다.

이제라도 인천역에서 출발한 철도 역사를 재정비하고 인천이 대한민국의 철도 시발지라는 사실을 확고히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올해는 국제철도협력기구 (OSJD : Organization for Cooperation of Railway)의 제49차 장관회의가 우리나라에서 열리기 때문에 더욱 절실하다.

전 세계 철도 주무 장관과 사장단이 참석하는 자리에서 기초적인 역사마저 국내에서 잘못 알려져 있다는 사실을 들켜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 시발지는?

1899년 9월 18일 철도 역사의 장이 열리고

경인 간 33.2㎞의 철로가 뚫린 그 날로부터 76주년

철마라 불리던 증기 시대를 거쳐 디젤기관이 철길을 누비더니

이어 전철의 막이 휘날리며 철도가 반석 위에 오른

오늘을 못내 그날의 감격을 함께 되새기며

유서 깊은 철도 효시의 요람지 여기 한강 마루에

이 기념비를 세워 기려 새 모습의 철도를 기리리라

시인 서정주가 우리나라 철도의 출발을 기리며 쓴 시발지 기념비문이다.

1897년 3월22일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 철도가 착공됐고 4월23일 기공식이 열렸다. 이 기념비는 1975년 9월18일 당시 철도청이 김종필 국무총리의 휘호와 서정주 시인의 비문을 새겨 세운 것이다.

하지만 이 비석은 시발지인 인천역에 있지 않고 엉뚱한 노량진역에 서 있다.

▲ 서울 노량진역의 '철도 시발지' 기념비.
▲ 서울 노량진역의 '철도 시발지' 기념비.

경인철도가 첫 영업을 시작한 1899년 9월18일 다음날 자 독립신문은 “당시 인천 정차장을 출발한 기차는 노량진역으로 이동해 대한제국 관료를 비롯한 귀빈을 태우고 인천역에 돌아와 개업예식을 열었다”라고 밝혔다. 한국 철도의 시발지가 인천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사료다.

이런데도 불구하고 기념비가 노량진역에 당당히 세워진 까닭은 개업예식 자료에 대한 당시 연구자들과 철도청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이 오류가 바로 잡히기는커녕 46년이 흐른 현재까지도 비석은 노량진역에 있다.

더 가관인 것은 정부 기관조차도 경인선 시발역을 노량진역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시민들에게 우리나라 최초 철도 시발역을 맞히는 퀴즈를 냈다. 정답자에게는 도넛과 커피 상품을 주기도 했는데 정답이 노량진역이었다.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닌 재작년 상황으로, 최소한의 역사적 고증도 하지 않고 지난 오류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정부의 철도에 대한 빈곤한 인식을 여실히 드러낸 사례였다.

잘못을 올바르게 수정하고 이제라도 기념비를 인천역으로 옮겨오자는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9년 9월 인천시립박물관은 철도 운영 120주년을 맞아 '다시 철도, 인천이다'를 주제로 특별전시를 열고, 철도의 최초를 기념하는 조형물들이 잘못돼 있다는 점을 알렸다.

이 때 유동현 인천시립박물관장은 "서울 노량진역에 철도 시발지 기념비가 있는데 역사적 고증을 해보면 철도 시발지는 분명히 인천”이라며 “지금이라도 인천역에 올바른 기념비를 세워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끝내 이 뜻은 이뤄지지 않고 여전히 노량진역이 시발지로 알려져 있다.

▲ 도원역 인근 '한국 철도 최초 기공지' 기념비.
▲ 도원역 인근 '한국 철도 최초 기공지' 기념비.

▲기공지 기념비도 제자리 찾아야

경인철도의 기공식을 기념해 중구 도원역 인근에 세워진 한국 철도 최초 기공지 기념비도 자기 자리가 아니기는 마찬가지다.

1897년 3월22일, 현재 인천 동구 창영동의 쇠뿔고개라고 불린 우각현에서 성대한 경인철도 기공식이 거행됐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도원역 인근에 '한국 철도 최초 기공지'라 새긴 기념비가 세워졌다. 그러나 실제 기공식이 열린 곳은 비석이 세워진 400여m 떨어진 곳이다.

기공지 비석에도 “정확한 기공장소는 이곳으로부터 동쪽으로 400미터 지점이며 별도로 표지를 설치하였다”는 문구가 쓰여있다.

 

한국 철도 최초 기공지(韓國鐵道 最初起工址)

이곳은 우리나라 첫 철도인 경인선을 기공한 터이다. 우리나라 철도는 고종 황제로부터 부설권을 특허받은 미국인 모스(James R. Morse)가 1897년 건양(建陽) 2년 3월22일 이곳 인천부우각리(仁川府 牛角里, 지금의 도원역 일대)에서 공사를 시작한 데서 비록한다. 이 기공식은 1825년 세계 최초로 영국에서 철도가 개통된 지 72년 만에 일이었지만, 말이나 가마를 이용했던 당시의 교통 사정에 비추어 보면 혁명적인 일이었다.

우리 나라에서 처음 철도의 필요성을 공식적으로 제기했던 사람은 1889년 미국에서 귀국한 한국 대리 공사 이하영(李夏榮)이었으며, 1894년 조선 정부는 드디어 철도 업무를 관장할 철도국을 정부 내에 설치하였다. 이즈음 일본은 철도부설권을 얻으려 획책하였으나, 고종 황제는 이를 모스에게 특허하였다. 그러나 모스는 기공식 후 곧 자금난을 겪게 되자 부설권을 일본인들의 경인철도인수조합에 넘겼고, 이 조합은 다시 이를 경인철도합자회사에게 되넘겼다. 부설권을 최종적으로 인수한 경인철도합자회사는 남은 공사를 모두 마치고, 1899년 9월 18일 인천역과 노량진역에서 각각 개통식을 가졌다. 인천역에서 노량진역 사이의 33.2㎞에 달하는 경인선에 마침내 개화의 상징인 철마가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힘차게 달리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 땅 인천에서 고고의 기적을 울리며 탄생한 철마는 비록 우리의 자본과 기술로 건설됐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경인선 개통은 우리 교통사(交通史)에서 가장 큰 전환점을 마련했다는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한국철도가 발전해 나가는 모태가 되었다. 그로부터 100년이 되는 오늘 이 역사적 사실을 되새기며 한국 철도와 인천광역시가 무궁하게 발전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곳에 기념비를 세운다.

1999년 9월 18일

/조성호 기획전문위원·트레인스쿨 대표<br>
/조성호 기획전문위원·트레인스쿨 대표

/조성호 기획전문위원·트레인스쿨 대표

/정리=장지혜 기자 jjh@incheonilbo.com

/사진제공=조성호 기획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