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인천 지방자치, 30년 전 외침에 귀 기울여야
[현장에서] 인천 지방자치, 30년 전 외침에 귀 기울여야
  • 이주영
  • 승인 2021.04.06 16:55
  • 수정 2021.04.06 16:55
  • 2021.04.0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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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5월16일, 군홧발이 지방의회를 짓밟았다. 박정희 육군소장을 위시한 군부 일당의 쿠데타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들은 자칭 군사혁명위원회라는 불법단체로 나라를 장악했고, 포고 제4호를 통해 이날 오후 8시부터 모든 정치 활동 금지와 국회·지방의회를 해산시켰다.

1960년 12월27일 구성된 3대 인천시의회는 5·16으로 해산되기까지 불과 125일밖에는 활동하지 못했다. 호랑이(박정희)가 사라진 군부에는 늑대(전두환)가 나타나 서울의 봄으로 아지랑이를 피우던 민주주의를 또다시 짓이겼다.

1962년 개정 헌법, 1972년 유신헌법, 1980년 신헌법에도 '지방자치' 규정은 있지만, 1961년 9월 군부가 만든 '임시조치법'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렇게 인천시의회는 30년간 암흑시대를 맞았고 국민의 민주화 염원에 힘입어 1991년 30년 만에 부활한다.

30년 전 인천형 지방자치를 고민하던 옛 인천인의 염원은 현재까지도 나아진 게 별로 없다. 당시 87대13이던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6대4까지 끌어올리지 못한다면 '지방자치는 실패한다'는 외침은 아직도 8대2의 비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부터 “정부로부터 수조 원의 국비를 따왔다”는 것을 치적으로 앞세운다. 5년 이상 인천 거주자만이 정치판에 출사표를 던지도록 요구한 모 교수의 일침에 '뜨끔'할 인천 위정자들이 상당하지 않을까.

1991년 7월8일 인천직할시 1대 시의회가 개원했다. 27명의 1대 시의원들은 '계란으로 바위치기' 심정으로 시 집행부를 견제하고 감시했을 거다.

지방자치가 낯선 시 집행부는 시정을 감추려고만 하고, 무성의한 답변과 자료제출로 시의회 공식 활동을 방해하기 일쑤였다. 오죽했으면 당시 한 상임위원회 위원장은 “몇 년 동안 행정사무감사 지적사항 중 70~80%가 같은 내용이다. 한 사안을 놓고 제출된 자료마다 다 다르다”고 일갈했다. 1대 시의회의 30대 주요 행감 지적사항 중에는 8개 구 소각장 설치와 인천 등 3개 시·도 수도권매립지 정책 개선 등도 있다. 30년이 지났지만 소각장은커녕 지역 간 으르렁거리기 일쑤고 수도권매립지를 놓고 인천과 서울·경기는 날선 대립각 중이다.

어렵게 꽃 피운 지방자치 30년, 1991년 인천시민들은 인천형 지방자치가 우선 해결할 사안으로 교통과 환경, 지역개발 등을 꼽았다. 이 기간 인천형 지방자치는 무엇을 해결했을까. 30년 전 인천형 지방자치 시작점을 되짚어봐야 하는 이유다.

 

/이주영 탐사보도부 1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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