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 엄혹한 조선의 현실 고치는 약재
▲ 화성시 역사박물관 전경. 화성시 역사박물관이 개관 10주년을 맞아 2021년 3월23일부터 우하영 선생의 <천일록> 원본과 번역본을 함께 배치해 관람객을 맞는다고 한다.
▲ 화성시 역사박물관 전경. 화성시 역사박물관이 개관 10주년을 맞아 2021년 3월23일부터 우하영 선생의 <천일록> 원본과 번역본을 함께 배치해 관람객을 맞는다고 한다.

“간 선생이 연재하는 조선조 실학이 코로나 19시대에 무슨 가치가 있지요?(.)” 아는 이의 도발적(?)이고 '단정적'인 질문이다. 단정적이라 함은 저 이 질문 실상인즉슨, 물음이 아닌 마침표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떤 글을 써야할까? 후안무치(厚顔無恥)를 좌장군으로 삼고 무치망팔(無恥忘八)을 우장군으로 삼아 오로지 돈과 명예에 혈안인 추하고 졸렬한 삶을 써야할까? 아니면 어용 언론, 영혼 없는 공무원, 탐욕 정치인, 물질만 추구하는 투기꾼이 이 땅의 주인공인 이야기를 써야할까? 오죽하면 초등학생들 장래 희망 3위가 건물주란다. 나라에 중병이 단단히 들었다. 이 모두 나잇값 못하는 이들이 어른인 척 설쳐댄 결과이다.

실학을 외친 이들 글은 중병을 고치는 약재로 가득 차있다. 실학을 외친 이들의 삶은 코로나19보다도 엄혹한 조선 현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조선의 미래를 그렸다. 이들의 글은 하나같이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살아보자는 글이었다. 그것은 따뜻한 인간이 살아가는 조선의 미래였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우리가 그리는 미래 아닌가? 연암 선생은 사람으로서 '사이비(似而非)가 되지 말라'했고 다산 선생은 공무원으로서 탐욕을 버릴 줄 알아야 한다며 '버릴 기(棄)'를 주문했다. 연재하는 우하영 선생은 “사유(四維)가 제대로 펼쳐지지 않으면 나라가 나라 꼴이 못 되고 사람도 사람 꼴이 되지 못한다”하였다. 사유란, 국가, 나아가 인간세상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예의염치(禮義廉恥)'이다. 예의와 부끄러움을 아는 염치는 나라의 중력이요, 인간 삶의 산소와 같다. 저 실학을 외친 선생들 글을 다소곳이 두 손 모으고 발맘발맘 따라가 볼 일이다.

<천일록> 제4책부터 이어진다. 제4책은 '과제'·'용인'·'화속'·'진정'·'곡부'·'균역'·'정전군부설'·'어장수세설'·'전화'·'주전이해설'·'채은편부설'·'채금편부설'·'조창변통설'·'육진승도설'·'평시혁파의'·'노방식목설'·'금도설'·'신명법제설'·'양육인재설' 등에 대해 논의하였다.

'과제'(科制)에 대해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시험을 주관하는 사람은 경중을 재는 과정에서 주객을 감별할 수 없으므로 인재와 잡된 놈이 뒤섞여 급제 결과가 달라진다. 속담에 “과거의 당락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고 한 것은 이 때문이다.

선생은 과거에 대한 욕심이 가장 절실한 현안이라며 이러한 과거 때문에 선비들의 풍습이 날로 천박해지고 권세가들에게 청탁하는 부정이 생긴다고 여겼다. 선생이 추천하는 방법은 과천법(科薦法, 과거제와 추천제)이다. 이는 이익이 주장한 과천합일설과 같다.

'용인'(用人)은 과거로만 인재를 선출하는 데서 생기는 폐단에 대한 글이다. 선생은 고위 관리들로 하여금 서울이든 시골이든 가릴 것 없이 당색이 다른 인재를 추천하라고 한다. 선생은 당색이 나타난 뒤로 세상의 도가 어지러워지고 공의(公義)가 사라졌으며 염치가 어그러졌고 관직의 법도도 어지러워졌다고 한다. 음사(蔭仕)제도도 지나치다 한다.

몇 년 전, 선생 의견과 비슷한 '인재추천카드를 통한 열린 채용'을 실험하는 회사가 신문에 실렸다. '__유플러스'라는 회사인데 모든 임원(상무보 이상)에게 나이와 학력에 제한을 두지 말고 인재를 뽑으라며 '입사티켓'을 5장씩 주었단다. 추천을 받은 자들은 별도의 전형 없이 직원으로 채용된다. 그 회사는 '파격적인 인재채용실험'이라고 생색내지만 이미 300년 전에 선각자들이 같은 방법을 써서 인재를 채용했음을 알면 어떻게 생각할까? 문제는 티켓을 가진 자들이 '인재추천카드'를 쓰는 방법일 것이다. 응당 추천받은 자들의 업무 성과는 추천한 자들의 업무 성과와 연계되어야 한다.

'화속'(化俗)은 풍속 교화에 관한 장이다. 선생은 중인도 배워야 한다면서 <소학>이라는 책을 예로 든다. <소학>은 주로 <예기>에서 뽑아낸 책으로, 주희(朱喜, 1130-1200)가 제자들에게 가르친 것을 제자 유자징(劉子澄)이 아이들을 위한 교재로 엮었다.

선생이 꾀하는 국가 형태는 유학에 바탕한 소강국가(小康國家)로서 <소학>을 백성의 성품 교육을 위한 교재로 삼았다. 선생은 “나라에 기강이 있으면 사람에게 혈맥이 있는 것 같다. 사람에게 혈맥이 없으면 움직일 수 없고 나라에 기강이 없으면 다스릴 수 없다”며 나라의 풍속에서 기강을 찾으려 하였다.

'노방식목설'(路傍植木說)은 선생이 주장한 여러 설 중 가장 돋보이는 장 중 하나다. 선생은 나무를 심는 게 다리를 건설하는 것 못지않다고 한다. 그러면서 3리에서 5리씩 거리를 두고 나무를 심자고 한다. 한여름에 등짐을 지고 길을 나선 사람이나 노약자들을 위해 그늘막을 만들자는 말이다. 몇 해 전에 등장한 '폭염 속 보행자 오아시스 그늘막 텐트'를 보면서 저 시절 선생의 이 주장이 예사롭지 않음을 느낀다. 선생은 이러한 제안을 자신이 처음으로 한 것이라고 하였다.

'금도설'(禁盜說)은 소, 말 등 동물의 이력제를 실시하자는 말이다. 소나 말을 다른 사람에게 팔 때 색, 털, 뿔을 종이에 기록한 지패(紙牌)를 함께 보내는 것이다. 소나 말을 훔쳐가는 것을 막자는 지혜이지만 이 역시 선생의 탁견이다.

'양육인재설'(養育人材說)에서 선생의 인재설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렇다. “뛰어난 사람을 뽑으려면 지체와 문벌에 얽매이지 말고 오로지 사람만 보고 등용하라.” 오늘날에도 '어느 대학 출신'인지를 꼼꼼히 따지는 저급한 패거리주의자들은 곰곰이 새겨볼 말이다.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은 인하대학교에서 강의하며 고전을 읽고 글을 쓰는 고전독작가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