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중반 한 때의 얘기다. 인문계 대졸자 취업 시장의 인기 1위 업종이 단자(短資)회사였다. 은행에 비하면 중소기업 수준이었지만 급여는 은행의 2배 정도나 됐다. 산업계의 투자 자금 수요를 못따라 은행 대출금리가 20%대였던 고도성장기였다. 일본식 명칭인 단자회사는 지하의 사채를 산업자금으로 돌리기 위한 제2금융권이었다. 기업들의 어음을 융통해 주거나 CMA(어음관리구좌)를 판매하는 등의 단기금융업이었다. 워낙 자금 수요가 넘치니 수익률이 좋아 직원들 급여도 높았던 것이다.

▶이런 호황 때문인지 한동안 단자회사들이 넘쳐났다. 1990년대 들어 노태우 정부는 이 단자회사들을 은행과 증권회사로 대거 전환시켰다. 1973년에 설립된 한양투자금융과 당시 럭키금성그룹 계열사이던 금성투자금융은 보람은행으로 변신했다. 1977년 재일동포 자본가들이 세운 제일투자금융은 이 후 신한은행의 모태가 된다. 고려투자금융은 동아증권, 세종증권을 거쳐 현 NH투자증권이 돼 있다. 1971년 순수 민간자본으로 설립된 한국투자금융은 국내 최초의 비은행금융기관이었다. 국내 처음으로 CMA를 출시하는 등 단자업계의 선두를 달리며 경제성장에 기여했다. 이 단자회사가 1991년 출범한 하나은행의 전신이다.

▶지점 2개와 직원 300여 명으로 출발한 하나은행은 쟁쟁한 기존 시중은행들에 비해 인지도도 매우 낮았다. 그러나 바로 신용카드 사업에 뛰어들고 처음으로 프라이빗 뱅킹 상품을 내놓는 등으로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외환위기가 오면서 충청은행과 보람은행을 인수, 전국 영업망을 갖췄다. 2002년에는 50년 역사의 서울은행을, 2015년에는 1967년 국책은행으로 설립된 외환은행까지 합병했다. 설립 30년만에 금융기업 빅4 반열에 올라선 것이다.

▶그런 하나은행이 인천으로 그 본산을 옮겨온다고 한다. 지난 주 이재현 인천 서구청장과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이 만나 하나금융그룹 본사 이전 프로젝트의 로드맵을 매듭지었다. 빠르면 오는 8월부터 시공에 들어가 2024년 1월에는 청라국제도시내 하나드림타운으로 본사를 이전한다는 것이다. 이미 청라에는 하나금융의 통합데이터센터와 하나글로벌캠퍼스(인재개발원)가 들어서 있다. 스마트에코모델형 본사 건물에는 지주회사·은행·보험·카드·증권 등의 본사가 입주, 임직원만 6000명에 이를 예정이다. 인천으로서는 대단한 빅 뉴스가 아닐 수 없다.

▶먼 옛날 일본에서는 조카마치(城下町)가, 한국에서는 사하촌(寺下村)이 번성을 누렸다. 큰 성이나 사찰이 요즘의 기업같은 존재여서다. 고도자본주의 시대, 기업은 한 지역의 지속가능발전을 좌우한다. 인천은 이미 포스코건설, 셀트리온,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스타 기업들의 본산이다. 여기에 하나금융까지 온다니, 인천시민들이 두팔 벌려 환영할 일이다.

/정기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