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본주의 심리학의 창안자 칼로저스(Carl Rogers)는 인간중심 치료에서 치료자의 가장 중요한 태도는 무조건적인 수용, 믿음이라고 했다. 믿음이란 어떤 사실이나 사람을 믿는 마음이다. 많은 사람이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이를 실천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한 어머니가 학부모회의에 참석했다가 유치원 선생님으로부터 “철수는 채 3분도 자리에 앉아있질 못해요. 병원에 한번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라는 말을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녀는 아들에게 말했다. “선생님께서 우리 아들을 칭찬하시더구나. 단 1분도 앉아있질 못하던 애가 지금은 3분 동안이나 견딘다고 말이야.” 그날 저녁, 아들은 평소와 다르게 어머니가 먹여주지 않고도 밥 두 그릇을 금방 먹었다.

아들이 자라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학부모회의에서 선생님이 어머니에게 “이번 시험에서 철수는 50명 중에 겨우 40등을 했어요. 혹시 철수의 지능이 낮은 게 아닌지 의심되네요”라고 말했다. 집으로 돌아와 그녀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께서 우리 아들을 무척 기특해하시더구나. 워낙 머리가 좋아서 조금만 더 노력하면 네 옆 친구를 이길 수 있을 것 같다더구나. 그 아인 이번에 겨우 21등을 했다면서?” 그 말에 아들은 놀라울 정도로 침착하고 어른스러워졌으며, 이튿날엔 평소보다 일찍 학교에 갔다.

아들이 커서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진학설명회에 참석한 어머니는 아들의 이름이 호명되기를 기다렸으나 끝내 호명되지 않았다. 선생님이 말했다. “지금 성적으로는 철수의 고등학교 입학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가 아들에게 말했다. “선생님께서 너한테 아주 많은 기대를 하시더구나. 네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겠다고 말이다.”

그 이듬해 아들은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3년 후 졸업을 앞두고,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은 명문대학 교표가 새겨진 합격통지서를 어머니에게 드렸다. 그리고는 엉엉 울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말했다. “얘야, 이 기쁜 날 울긴 왜 우니?” “엄마, 제가 머리 나쁜 애라는 걸 잘 알아요. 하지만 엄마가 저를 그토록 믿어주셨기에…” 아들의 말을 들으며 어머니는 지난 10여 년간 가슴속에 혼자 묻어두었던 눈물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아마도 이때 어머니는 기쁨과 아픔이 어우러진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공부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고뭉치 아들에게 꾸지람 대신 격려의 말을 하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한 일은 '너만 믿는다'였다.

사람은 믿어주면 성장하고 변화한다. 많이 믿어주면 많은 성장과 변화가 일어나고, 조금 믿으면 적은 성장과 변화가 일어난다. 믿어줘야 그 사람이 가진 잠재능력이 발휘된다. 피그말리온 효과도 결국 사람은 믿어주면 그 믿음에 부합하기 위해 노력을 함으로써 좋은 결과를 내게 된다는 이론이다. 믿어준다는 것은 사랑의 표현이기도 하다. 굳게 믿고 의지한다는 것은 그 만큼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아이들의 잠재능력은 무엇이고,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짐작할 수가 없다. 아이들이 무궁무진한 잠재능력을 조금씩 드러낼 때 서툴더라도 지켜봐야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기다림이고 아이들에 대한 믿음이다. 좀 더디고 마음에 안 들더라도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깊은 사랑으로 믿어주고 바라봐주고 칭찬해주면 아이들은 기대한대로 자란다. 기대를 넘어 더 멋지게 자랄 수도 있다. 믿음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다.

'믿어줌의 마력'은 '진짜 믿음'에서 나온다. '진짜 믿음'은 어디를 보아도 믿을 만하지 못하고 신뢰할 수 없을 때일지라도 그저 믿어주는 것이다. 믿음은 경비와 노력 없이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결코 쉽게 줄 수 없는 선물이다. 가장 주기 어려운 선물이기에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선물이기도 하다.

/정종민 성균관대 겸임교수·전 여주교육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