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명한 계관시인 T.S. 엘리엇이 '잔인한 달'이라고 했던 4월이다. 왜 시인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을까 하는 의문을 누구나 한 번쯤 가져보게 되지만, 피로 얼룩졌던 4·19혁명과 세월호 참사를 겪은 우리는 시공을 넘어 고개가 끄덕여지게 된다.

하지만 남북관계에서 4월은 자연스레 3년 전에 있었던 '판문점의 봄'을 떠올리게 된다. 그해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북미 간 대립이 극한까지 치달았기에, 판문점에서 남북정상의 만남은 한반도를 넘어 전 세계인의 이목을 끌었고 흥분의 도가니에 몰아넣었다. 두 정상의 판문점 도보다리 대화는 더욱 감동적이었다. 통역과 수행원도 없이 그야말로 단 둘이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누는 장면을 보면서 '그래 우리는 피를 나누고 같은 언어와 문화를 가진 같은 민족이었지' 하는 생각들을 자연스레 떠올렸다. 그해 9월 두 정상이 평양에서 다시 만나 회담을 하고,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 천지에 함께 올라 두 손을 맞잡고 8000만 겨레 앞에 평화와 번영을 얘기할 때 '통일이 멀지 않았구나' 하는 기대가 넘쳐났다. 그러나 채 3년밖에 지나지 않은 지금, '판문점의 봄'이 다시 올 거라고 기대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남북관계는 악화될 때로 악화되어 있다. 대화는커녕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통신선마저 단절되었다. 급기야 남북관계의 상징이었던 개성남북연락사무소가 2020년 6월16일 폭파되는 참담한 사태를 봤다.

그런데 지난 3월에 우리는 작년 6월과 비슷한 상황을 다시 보고 있다. 북은 올 1월에 열린 노동당 8차 당대회를 통해 남쪽과의 관계를 이전과 완전히 다르게 규정하고 있었다. 자주_평화_민족대단결이라는 조국통일 3대 원칙을 당규약에서 삭제하는가 하면, 이제까지처럼 선의로 대하는 것에서 남쪽이 하는 만큼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3월15일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한미연합훈련을 규탄하면서 대남 대화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금강산국제관광국을 없애버리고 남북군사합의서를 파기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며, “3년 전의 봄날은 다시 돌아오기 어려울 것”이라는 담화를 발표했다. 15일에는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 26일 리병철 노동당 중앙위 비서, 28일 조철수 외무성 국제기구국장에 이어 3월30일 김여정 부부장이 다시 나서 문재인대통령에 대해 '미국산 앵무새'라고 비난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북이 이제까지와는 달리 문재인 대통령을 직접 비난하고 나선 것은 미국에 의해 끌려다니는 남쪽의 모습에 기대를 완전히 접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답답하고 굴종적인 태도는 우리 내부에서도 문제인식이 제기되었다.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은 자신의 책 출간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방위비분담금 협상을 보면서 “속된 표현으로 미국이 우리의 '삥'을 뜯은 거였고, 당시 우린 '빵셔틀' 취급을 당한 거로 생각합니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이제는 할말은 해야 하며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외교의 목표이고, 한미동맹 중독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다수 전문가들은 작년처럼 이번에도 충격적인 상황에 맞닥뜨리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4_7재보선을 앞두고 있는 지금 문재인정부에게 실망한 촛불 민심은 분노를 삭이고 있다. 그나마 문재인정부의 성과라고 할 수 있었던 남북관계마저 파탄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이제라도 남북관계가 더 이상 악화되는 것을 막는 길은 3년 전 9월19일 평양 능라도 5_1경기장에 모인 15만 평양시민들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연설에서 약속했던 '민족자주와 민족대단결'의 입장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것만이 북의 충격적인 실제행동을 또 다시 보지 않는 길이며, 4월이 남북관계에서 '잔인한 달'로 기억되지 않는 길이다.

 

/이성재 인천자주평화연대 상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