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10월 이집트와 시리아가 기습적으로 이스라엘을 공격해 제3차 중동전이 시작되었다. 1967년 이스라엘의 선공으로 뼈아픈 패배를 당한 이집트와 시리아가 빼앗긴 영토를 되찾고 패전국의 불명예에서 벗어나기 위해 감행한 전면전이었다. 당시 조선일보 파리특파원으로 일하던 필자는 중동 전쟁을 현장에서 취재하라는 본사의 지시를 받고 텔아비브행 항공편을 수소문했으나 모두 결항이었다. 신문사 초년병 시절에 국제부에서 1967년 중동전 해설기사를 여러 차례 쓴 기억도 새롭고 그후 이스라엘 정부 초청으로 현지에 가본 적도 있어서 전쟁중인 이스라엘을 꼭 가보고 싶던 터었다.

▶파리주재 이스라엘 대사관에서 공보관을 만났을 때 한 가닥 희망이 생겼다. 그는 한국의 대표적인 일간지의 프랑스 주재 특파원으로 과거 이스라엘 정부 초청자였음을 알고 본국과 교섭하더니 오늘 저녁 텔아비브로 가는 예비군용 항공기를 마련해 주겠다고 제의했다. 파리 공항을 떠나서는 소등을 한채 텔아비브까지 비행하는데 사고가 나도 이스라엘 정부는 책임이 없다는 서류에 서명을 해야한다고 했다. 30대 초반의 젊은 언론인으로 세계적인 전쟁 취재에 위험을 각오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생각되던 때였다.

▶10월7일 자정 0시20분 파리 오를리 공항을 떠난 이스라엘의 엘알항공기에는 프랑스에 거주하는 이스라엘 예비군과 지원병들이 빼곡히 탑승하고 있었다. 4시간 정도 비행하는 동안 소등을 한 기내는 캄캄했고 전쟁터로 가는 이스라엘 지원병들은 숙연하고 비장감마저 느껴졌다.

▶텔아비브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에는 이미 많은 각국 기자들이 취재중이었으나 대부분이 이스라엘 기자들과 외신기자들이었다. 한국 언론인으로서는 최초로 프레스카드(취재기자증) 신청을 하기 위해 담당관실로 가니 수년전 이스라엘 정부 초청으로 왔을 때 편의를 보아주던 공보실 헬조크 씨가 중령 계급을 달고 반갑게 맞아주었다. 파리에서의 항공편도 그가 배려해준 것을 알고 인연의 고마움을 새삼 실감했다.

▶전쟁 취재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며칠 후 이스라엘군이 수에즈 운하를 건너 이집트 영토에 발을 들여놓던 날 8명의 풀기자단에 뽑힐 수 있었던 것도 헬조크 중령의 배려로 가능했었다. 25일 새벽 1시 군용트럭을 타고 시나이 반도를 횡단해 수에즈 운하에 도착한 것은 아침 8시였다. 철제 임시부교를 건너 이집트 쪽으로 가면서 파괴된 탱크들이 보였고 군인 시체가 여러구 물위에 떠있었다. 이집트 쪽에서는 수천명의 포로들이 트럭으로 수송되고 있었고 '수에즈 80㎞'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22만t의 에버그린 컨테이너선이 좌초되어 물류 대란이 발생한 것을 보면서 48년 전에 건넜던 수에즈 운하가 인류에 기여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신용석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