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으로 날 보내 주-” 한때, 미국 민요의 음률을 광고에 차용한 두루마리 화장지 선전이 있었다. 화장실용 두루마리 화장지를 식탁이나 화장대에 놓지 말고 용도에 맞도록 제작한 고급 화장지를 구비하라는 유혹이었다. 요즘 집집마다 화장대와 식탁에서 두루마리 화장지가 치워진 지 오래다. 선전대로 각자 제 고향을 찾아간 것일까.
 단백질 보충하려고 개나 고양이용 통조림 사료를 끓여먹었다는 유학생들의 이야기는 이미 전설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슈퍼마켓에도 즐비한 애완동물용 사료는 절대로 사람들의 식탁에 올라오지 않는다. 명절이나 어른 생일상에나 볼 수 있었던 고기는 요즘 삼시세끼 밥상에 올라오지 않는가. 사료도 화장지도 고향을 찾은 것인가.
 책보 던지자마자 소 먹이러 방죽에 나가고, 아버지가 밭에서 돌아오기 전에 쇠죽 끓여야 했던 시절, 집집마다 한 두 마리 키웠던 가축들은 사람들이 먹지 않는 볏짚이나 음식 찌꺼기로 배불렸지만, 강아지 전용 수입사료까지 등장한 요즘, 산업으로 변모한 소 돼지 닭 사육농장주는 사람도 먹을 수 있는 곡물사료를 선호한다. 단시일 내에 몸무게를 불려야 경쟁사회에서 돈을 더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만성 기아에 허덕이고 기아 사망자가 속출하는 제3세계에 구호식량을 보내지 말라던 신맬서스주의자는 `약육강식"" 제국주의식 논리를 들먹였다. 배급식량을 먹고 인구가 늘어나면 지구의 환경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며 난색을 표하던 그들은 크림파이를 집어던지며 배꼽 빠져라 놀고, 조금만 더워도 에어컨을 펑펑 돌리는 지역의 낭비에 애써 눈을 감았다. 아이엠에프 경제 신탁통치 시절 결식아동이 눈에 띄게 증가한 우리나라는 해마다 8조원에 달하는 음식쓰레기를 버린다는데, 빈부격차가 더욱 두드러진 신자유주의 시대를 맞아 우리의 식량분배는 얼마나 정의로운가.
 식량의 4분의3을 수입해 먹는 우리는 오랜 식량 생산기지인 새만금을 매립하려하고, 멀쩡한 논을 메워 밭으로, 밭을 메워 과수원으로, 과수원을 메워 러브호텔을 돋아 올린다. 반도체 자동차 팔아 밥 사먹으면 그만이라고 강변하지만, 해외 의존형 수출 경기가 둔화되면 어쩌나. 돈이 있어도 구입할 식량이 부족해지면 어쩌나. 이미 징후는 흉흉한데.
 진정한 독립은 식량자급이라고 언급한 프랑스 드골 대통령의 선견지명을 반영하듯 식량농업기구는 안보차원에서 식량 자급을 권고하는데, 이런 추세로 한 세대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는 월드워치연구소 거듭된 경고가 사실로 나타난다면, 우리는 머지 않아 밥 대신 팔리지 않은 반도체나 자동차를 뜯어먹어야 하게 생겼다.
 배고픈 제3세계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식량의 분배정의 이상으로 시급한 일은 식량 자급자족 구조를 회복시키는 일일 것이다. 일부 지역의 남아도는 식량을 동물 사료로 낭비하기보다 채식으로 가축 소비를 줄이고, 99방울의 농부의 땀이 배어 있는 쌀 한 톨도 함부로 버리지 말아야 하는 일이다. 우리는 밥을 먹고살지 뻣뻣한 돈이 먹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밥도 땅도 돈도 반도체나 자동차 모두,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박병상·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