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시립박물관 내 중국 범종 (시 유형문화재)

초등학교 시절 이맘쯤 자유공원에서 사생대회가 자주 열렸다. 기상대 하얀 원통 건물이나 월미도 앞바다를 대충 그려서 제출한 후 친구들과 공원 일대를 쏘다녔다. 광장에서 긴 계단을 내려가다 보면 한자로 쓴 나무간판이 걸려 있는 이국적 건물을 만났다. 한 친구가 아는 체를 했다. “여기 박물관이야, 저번에 아버지랑 왔었는데 무지하게 큰 맘모스 이빨도 있다.” 구경하고 싶었지만 입장료를 내야 했다. 아이스크림 하나 사 먹을 수 있는 돈이었다. 우리는 들어가지 않고 건물 주변을 맴돌았다. 박물관 뒷마당에는 엄청나게 큰 종이 세 개가 놓여 있었다. “와, 에밀레종이다.” 학교에서 주워들은 풍월 탓에 커다란 종은 우리에게는 모조리 에밀레종이었다. 종소리를 내고 싶어 두들겨 봤지만 손바닥만 아팠다. 우리는 짱돌을 주워서 함께 두드렸다. “에밀레, 에밀레” 입으로 소리를 냈다.

인천시립박물관은 1946년 4월1일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박물관으로 개관했다. 광복 직후라 정치적, 사회적으로 매우 어수선했고 배고팠던 시기였다. 혼란기였음에도 박물관 문을 열었다는 것은 그만큼 인천의 문화적 잠재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인천은 박물관을 비롯해 도서관, 예술관 등을 갖춘 전국 유일의 문화 도시였다. 내일은 인천시립박물관 개관 75주년이 되는 날이다.

석남 이경성 초대관장의 헌신으로 1946년 만우절에 많은 난관을 헤치고 정말 거짓말처럼 박물관 문을 열었다. 동아일보는 그날 '해방 후 처음 맞는 춘사월 광복의 꽃을 피우게 하자!'라는 제목의 개관 기사를 실었다. '박물관'이란 말이 낯설었는지 기사 본문에 '방물관'이라고 표기되었다.

박물관 집무실 창 너머로 중국 철제 범종 3구가 보인다. 필자가 어린 시절 짱돌로 두드렸던 바로 그 종들이다. 철없던 그 소년이 41대 박물관장이 되어 그 종을 매일 보고 있는 거짓말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유동현 인천시립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