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가을 처음으로 중국 대륙 땅을 밟았다. 인천∼웨이하이 카페리 항로 개설 직후였다. 미수교 적성 국가인지라 안기부 교육도 받고서다. 인천항 갑문을 통과하는 경험도 새로웠다. 이튿날 아침에 닿은 웨이하이항은 벌겋게 녹쓴 선박들이 가득했다. 대형 음식점도 화장실은 중국 재래식인 시절이었다. 옌타이∼베이징간 비행기에서는 장조림 오리알 하나가 기내식으로 나왔다. 관광버스에 오르니 가이드가 세명이나 됐다. 사회주의식 일자리라 했다. 한국은 단군 이래의 고도성장을 구가하던 시절, 한국 관광객들은 졸부적 우월감에 우쭐하곤 했다. 그들 눈엔 '참으로 소박한' 풍경의 저개발 사회주의 나라였다.

▶그런 중국이 수십년 사이 '세계의 공장'으로 굴기하면서 사뭇 달라졌다. 이웃 나라 사람들 눈에는 국제 무뢰한이다. 사방팔방으로 영토 분쟁을 일으키며 전쟁도 마다하지 않는다. 한국엔 그 살벌한 한한령제재를 5년 넘게 풀지 않고 있다. 2017년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에 '개집 접근 방식(doghouse approach)'이라는 외교 용어가 실렸다. 중국이 사드 배치를 빌미로 한국을 거칠게 다루는 방식을 말한다. '중국은 상대방 행동이 맘에 안들면 바뀔 때까지 괴롭힌다. 그래도 안되면 개집에 가둬 벌을 준다. 그 다음엔 적절한 처벌 기간이 끝난 뒤 상대를 개집에서 꺼내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굴면서 상대가 고마워 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나라 끼리는 그렇다 치더라도, 중국 네티즌들의 무분별한 발호는 중국 자체에 대한 정서적 혐오까지 불러일으킨다. 국내 한 정치학자는 최근 이들을 일러 '21세기판 홍위병 집단'이라 이름 지었다. '세계를 검열하려 드는 어글리 차이니즈의 등장'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외부의 누군가가 진실을 얘기하면 화부터 내고 떼거지로 공격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최근 5년 사이 21세기 홍위병들은 외국에 대한 공격을 14회나 감행했다. 이 중 일본에 대한 것은 한 차례 뿐이고 한국은 다섯 차례나 공격했다. '만만한 한국 짓밟기'가 시범 케이스로 제 격이라는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 MZ세대들의 반중국 감정이 달아오를 지경이라고 한다. 그간 쌓여오긴 했지만 중국의 한 김치공장 영상이 더 불을 지폈다. 알몸으로 뛰어들어 김치를 버무리고 녹슨 굴삭기가 휘젓는다. 요즘 식당마다 김치에는 젓가락을 거둔다고 한다. 한 지상파 방송의 드라마도 결국 폐지됐다. 하필 세자 시절의 세종대왕이 바티칸에서 온 가톨릭 사제에게 월병 등 중국 음식을 대접하는 장면이 젊은 시청자들의 비위를 뒤집은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한국 지우기 허튼 공작은 진행형이다. 그간의 '김치공정' '한복공정'에 이어 이번엔 '삼계탕 공정'이란다. 본래는 중국 '광둥식 요리'라는게 어거지다. 눈에 뵈는 것마다 '다 내꺼'라고 하다가 기어이 크게 배탈 날 것이다.

 

/정기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