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의 1점은 부정의 100점보다 명예롭다.” '석두(石頭-돌대가리) 선생'이란 애칭으로 불렸던 길영희(吉瑛羲·1900∼1984년) 제물포고교 교장의 믿음이었다. 1956년 길 교장은 '무감독 시험'을 도입했다. 교사가 시험을 감독하지 않는 제도다. 아직도 이어진다. 그는 광복 후 인천중학교 교장으로 부임해 학교를 민족교육 도장으로 바꾸는 한편, 1954년 제물포고등학교를 설립해 교장을 겸임했다. '학식은 사회의 등불, 양심은 민족의 소금'이란 신념 아래, 무감독 시험과 개가식 도서관 등 독특한 제도를 운영하며 나름의 교육철학을 실천한 인물이다. 1962년 교장에서 물러났지만, 학교와 학생에 대한 그의 헌신은 교육계와 지역사회의 귀감으로 남았다.

제물포고는 인천지역 명문고로 줄곧 자리를 잡아왔다. 1960∼70년대엔 서울 명문대에 무더기로 합격자를 배출하는 등 '실력' 면에서도 금자탑을 쌓았다. 당시 제물포고 수험생들이 머리를 빡빡 밀고 대입시험을 치른 일은 유명했다. 길 교장 교육철학 뒤를 이은 교직원과 학생들은 나라의 기둥이고자 힘을 쏟아왔다. 1975학년도 고교 평준화 이후 '명문대 입학' 학력은 줄었지만, 그 정신만큼은 녹슬지 않은 채 계승됐다. 이처럼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제물포고교가 '비인기 학교'로 추락 중이다. 학교는 구도심(중구 자유공원로)에 위치한 탓에, 지속적인 학생 수 감소를 겪으며 애를 먹는다. 한때 전교생 2000명을 넘겼다가 2021년 현재는 418명에 불과하다. 2000년도 1641명이던 학생 수는 2015년 655명, 2020년 457명으로 줄었다. 구도심 학교의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전교생 중 중구에 사는 학생은 30%도 안된다. 그러자 인천시교육청이 제물포고의 송도국제도시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제물포고 터엔 진로·직업 관련 교육기관에 더해 시민들이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테마공간을 꾸미겠다고 한다. 도성훈 인천시교육감은 지난 16일 이런 내용이 포함된 '인천교육복합단지' 사업 계획을 밝혔다. 그는 “과거 인천 중심지로서 깊은 역사와 시민 추억을 새긴 동인천 일대를 교육과 경제가 선순환하는 원도심 활성화 발전 모델로 구현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제물포고 송도 이전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학생 수 급감으로 이전 필요성이 커졌다고 하는 반면, 여전히 원도심 침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2003년 이후 수차례 학교 이전을 요구해 왔던 제물포고 총동창회는 학교 이전 계획을 반긴다. 반대로 원도심 인구수가 줄어드는 마당에 학교마저 이전하면, 주변은 완전히 고립된다는 지적이다.

제물포고 이전에 대한 논란은 불가피하다. 인천의 뿌리인 중구에서 상징적 의미를 지닌 제물포고마저 다른 데로 떠난다면, 중구민들의 상실감은 클 수밖에 없다. 인천시정 목표인 '더불어 잘사는 균형 발전'과 '원도심 활성화 촉진'에 배치되는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학교와 지역사회가 상생할 수 있는 길은 정녕 없는가. '장소성'과 '역사성'을 지키는 일이 이다지도 힘든 일일까 싶다.

 

/이문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