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래염전 소금창고 (2005년).

20여 년 전 미용실에서 순서를 기다리다 펼친 잡지에서 우연히 보았다. 모 여성복 화보 속 배경이 소금창고였다.

세련되고 화려한 여성 패션과 극적으로 대비되었다. 거칠고 투박한 목조 창고의 결은 마치 늙은 염부(鹽夫)의 주름살처럼 보였다. 1년 후쯤 소래습지생태공원에서 그 소금창고를 실제로 마주하고 연신 탄성을 내질렀다. 잡지 속 모습보다 훨씬 포스 있게 멋있었던 그 소금창고는 이후 내 카메라의 단골 피사체가 되었다.

1933년 조성된 소래염전은 60년 넘게 수차(水車)를 돌리다가 1996년 문을 닫았다. 햇볕에 검게 그을린 염부들이 소금밭을 떠났지만 그 흔적을 그대로 보여준 것은 소금창고들이었다. 오랫동안 빈 창고로 남아 바람만 드나들자 급격히 쇠락했다.

미용실 잡지에서 본 모습이 거의 끝물이었던 것이다. 무릎 꺾인 채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애처로운 몰골이었다. 불이 나서 거의 잿더미가 된 것도 있었다. 7채 소금창고 가운데 4채가 주저앉았다. 현재 한 채만 그런대로 온전하고 두 채는 '관상용'으로 활용될 뿐이다.

이 지면에 소금창고를 소환한 것은 '인천시 등록문화재' 선정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근대문화유산의 보존과 활용을 위해 시 등록문화재 제도가 올해 처음 시행된다. '제1호' 지정은 상징적이다. 1호 문화재는 단순히 등록한 순서가 아닌 인천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인천인의 정서를 대표해야 한다. 인천 색깔을 진하게 보여주는 소재로 소금창고만 한 게 또 있을까.

걱정되는 것은 경기도도 근대문화유산 1호 타이틀을 두고 각축을 벌이고 있는데 인천 남동구와 갯골을 사이에 둔 시흥시가 소래염전 소금창고를 신청해 놓은 상태다. '인천 짠물'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인천의 지층(地層)과 시층(時層)에는 소금기가 진하게 배어 있다. 만약 경기도에 선수를 빼앗긴다면 '인천 맹물'이라는 소리를 들을 게 뻔하다.

/유동현 인천시립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