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IMF 위기 이후 탄생
20여 년간 노동 가치는 지속 하락

인턴·프리랜서·외주 이름 포장
사회 양극화·불평등 큰 역할

공공 정규직 전환은 '중규직' 허구
자회사 소속·임금 차등 무기계약
민간기업 더 악랄하게 벤치마킹

비정규직 노조 가입 2~3% 불과
대기업 횡포·중기 인원 확보 난항

11월 사회대전환 총파업 예고
노동자 우위에 서는 사회돼야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 출신
“과감히 용기 갖고 함께하자”

[양경수] 민주노총위원장

지난해 12월29일. 양경수(45) 민주노총 위원장은 국회 앞에서 10일간의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차기 위원장에 당선된 지 불과 5일 만이었다. 임기도 중대재해기업 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앞에서 시작했다. 양경수 위원장은 현재도 비정규직 노동자다. 10일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위원장실에서 만난 그는 비정규직 제도의 현주소를 '재벌과 대기업을 살찌우는 구조'라 진단했다. “비정규직 제도가 유지되며 노동자의 가치는 한없이 추락했고, 이제는 대기업과 재벌 중심으로 부가 집중되는 것을 돕고 있다.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을 조장하는 제도다.”

▲비정규직 탄생 20여년 … “노동자가 할인마트 물건과 비교되는 사회”

한국 사회 비정규직 제도는 지난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후 탄생했다. 양 위원장은 20여년이 흐른 비정규직 문제는 '노동자의 가치 하락'으로 이어졌다고 봤다.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은 노동 가치 자체를 하락시켰다는 점이다. 고용의 불안정성과 고된 노동강도, 저임금 문제 등은 노동 가치 하락에 따른 것이라 생각한다. 예전에는 기업이 사람 한명을 채용하더라도 신중했고, 일을 종료시키는(해고하는) 과정도 신중했다.

그런데 지금은 굉장히 편해졌다. 사람을 아주 쉽게 쓰고 아주 쉽게 버린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쓰다가 망가지면 버리는 부속품으로 생각하는 것뿐만 아니라 쓰다가 필요 없어지거나 필요가 적어지면 바로 버릴 수 있는 노동자로 생각하는 사회가 됐다.

이제는 심지어 꼭 필요하지 않아도 '한번 써보자'는 생각으로 노동자를 대하는 상황까지 왔다. 마치 할인마트에서 값이 싸니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라도 사고 필요 없으면 버리는 취급을 노동자가 받고 있다.”

양 위원장은 일각에서 '비정규직 제도를 옹호하는 논리인 기업활동의 유연성'에 대해서는 제도가 왜곡돼 실효성을 잃었다고 반박했다.

“비정규직 제도의 필요성을 말하는 사람들은 흔히 여름엔 아이스크림 공장, 겨울엔 난로 공장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한다. 그렇다면 단기간에 짧은 기간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훨씬 더 많은 대접과 보장이 필요하다. 사용자가 더 큰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사용해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저임금과 고된 노동, 불안정한 고용을 안고 있는 현재의 비정규직 제도는 사라질 것이라 본다. 사용자는 정규노동을 중시하고, 정말 필요한 경우에만 더 큰 비용을 지불하고 비정규직을 사용하게 된다.”

“현재 비정규직은 포장돼 있다. 인턴이라는 이름으로, 프리랜서, 아웃소싱, 외주, 용역 등의 이름으로 포장돼 있다. 사실은 비정규직이고 하청인 구조다.

비정규직 제도는 새로운 신 계급사회를 만든다. 비정규직을 운영하는 이득을 재벌과 대기업이 차지하고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에 역할을 하고 있다.”

 

▲정부 정규직 전환의 허구 … '중규직'

양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에도 허구가 있다고 지적했다. 문 정부는 30만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으나 대다수는 기존 정규직 직원과 다른 임금체계와 복지 혜택 등을 받는 무기계약직이고 '자회사'를 통해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경우도 있다.

“무기계약직과 자회사 직원은 계약 형태로만 보면 기간의 정함이 없는 정규직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러나 실제는 저임금에서 탈출하지 못하면서 공공부문에 고용된 의무만 늘어난다. 이들은 정규직으로 포장된 비정규직인 '중규직'이다.”

양 위원장은 '중규직'의 양산은 정부의 정규직 전환의 허점이 되고 있다고 했다.

“코레일네트웍스가 대표적인 예이다. 코레일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자회사인 코레일네트웍스를 만들었다. 본인들이 직접 고용하면 되는 걸 '전문성이 없다'는 이유로 자회사를 만들었다. 결국 '비정규직 노동을 하던 사람들'이 기존 정규직 직원과 같은 처우를 받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당신들은 언제든 버릴 수 있는 사람이다'고 의지를 밝힌 거다.”

“정부 정책이 중요한 이유는 민간 업체가 공공기관의 사례를 보고 악용하기 때문이다. 민간 업체는 훨씬 더 악랄한 방법으로 벤치마킹하고 있다. 평택 현대위아 노동자들은 회사와 불법파견소송을 벌이며 2심까지 승소했는데, 회사는 소송을 취하하고 자회사로 들어온다면 받아주고 아니면 울산 현대공장으로 출근하라고 하고 있다.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 전환의 모습을 공공이 보여주니, 민간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낮은 비정규직 노동조합 조직률 원인은? … “대기업의 횡포”

한국 사회 비정규직 노동자는 800만~1000만명으로 추산된다. 이중 노동조합에 가입한 사람은 2~3%로 낮은 수준을 보인다.

양 위원장은 이런 낮은 조직률의 원인을 '대기업의 횡포'로 꼽는다.

“원청과 대기업이 노동조합을 죽이고 있다. 대기업은 하청업체와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단위로 계약한다. 그런데 하청업체에서 노동조합을 만들면 사장을 부른다. 그리고 '이번이 계약 마지막이다. 잘 생각해라'고 말을 전하는 거다. 구체적으로는 말하지 않았지만 노조가 있다면 더는 일거리를 안 주려고 한다는 것이다.

착한 사장은 노동자에게 애원한다. 나쁜 사장은 어떻게 해서든 노조를 해체하고자 한다. 이런 대기업의 횡포가 하청업체에서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기 어려운 원인이다.”

“5인 이하 사업장 등 소규모 사업장의 노동조합은 또 다른 부분의 어려움이 있다. 플랫폼 노동자 등은 워낙 소규모라 사용자 측과 협의할 수 있는 노동자 수를 확보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민주노총에서는 지역 단위 노조를 통해 이들과 함께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비정규직 제도 완전 철폐...“노동자도 IMF를 이겨낼 수 있게 해달라”

양 위원장은 비정규직 제도의 근본 해결 방법으로 법과 제도의 회귀를 꼽는다.

“비정규직 제도가 심각한 문제가 됐으나, 역으로 생각해보면 생긴 지 20여년밖에 안된 제도다. 20년 전으로 법과 제도를 돌리면 문제를 일소할 수 있다. 파견법, 기간제법, 정리해고법 등이 철폐된다면 불법파견 등으로 다툴 일 자체가 없어진다.”

그러면서 IMF의 극복을 노동자도 함께 느낄 수 있는 사회를 요구했다.

“정부와 기업은 IMF를 이전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으로 극복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들은 극복했지만 노동자들은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에 대한 법과 제도를 똑같이 회복하고 노동자의 삶을 회복해야 한다.”

 

11월 총파업 예고 … '사회 대전환 요구'

민주노총 지도부는 당선 직후 올해 11월 대규모 총파업을 예고했다. 민주노총은 총파업을 통해 사회 대전환과 불평등 타파, 노동기본권을 요구한다는 계획이다.

“한국사회가 전환기라는 것에 대해서는 정부도 동의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한 전환이냐는 것이다. 자본가 중심 기득권 중심의 한국사회 재편이 아니라 노동자 민중들이 존중받고 노동자 민중이 우위에 서는 한국사회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소득과 교육, 자산의 불평등은 우리를 규정하는 상황이 됐고, 불평등을 타파하기 위해 총파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10일 인천일보와의 인터뷰에서
▲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10일 인천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민주노총은 위원장이 비정규직이다"고 말하고 있다. /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

 

비정규직 출신 위원장 “용기 내 함께하자”

양 위원장은 지난 2007년 기아자동차 사내하청업체에 비정규직 노동자로 취업했다. 일반 조합원이던 2010여년쯤 회사에서 라인 공사로 휴업을 했다. 일주일에 3일씩 돌아가며 휴업을 진행했는데 회사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차별했다. 정규직 임금은 그대로지만 비정규직은 주휴수당을 못 준다고 했던 것.

그때의 불합리를 이겨내기 위해 고용노동부에 문의하면서 '우리를 지키기 위한 노조가 필요하다'는 점을 느꼈다고 한다.

“당시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생긴 지 2년여밖에 되지 않았고, 조합원들은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는 패배감도 있었다. '법적으로 된다'는 회사의 말에 역시나 법은 우리편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법적으로 회사의 귀책사유로 인한 휴업이었기에 회사가 틀린 것이었다. 잔업 거부를 계획하면서 노조가 이런 일을 해야 하고, 사용자 측에 대응할 수 있어야 우리의 권리를 지킬 수 있다고 인식하게 됐다.”

이후 양 위원장은 사내하청분회장과 민주노총 경기본부장을 거쳐 민주노총 위원장에 당선됐다. 그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함께 용기를 내자고 전한다.

“민주노총은 위원장이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위원장으로 선출되는 조직이라고 한다면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해 투쟁하는 곳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과감하게 용기를 갖고 노동조합의 깃발을 함께 들고 찾아와 줬으면 좋겠다. 우리도 많이 찾아가겠다.”

/김중래 기자 jlcomet@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