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0년이다. 코로나로 설 연휴를 간소하게 보내고 10주기 제사도 산소에 다녀오는 것으로 대신했다. 봄이 오는 산골짜기를 내려오며 삼베 두루마기를 상복으로 입었고 선친의 수의(壽衣)를 챙기던 기억을 떠올렸다. 특히 나일론이 포함되는 있는 수의는 잘 썩지 않으니 사용하면 안된다는 사촌 형님의 말씀.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고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남기는데 현대인들은 유독 잘 썩지 않는 쓰레기를 많이 남긴다. 생존을 위한 호흡으로 이산화탄소만 내뿜는 것이 아니라 전기를 쓰고 자동차를 타면서 수많은 탄소자국을 남긴다.

도시 인근의 산에서는 공동묘지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수도권 서남부지역의 산줄기인 한남정맥에도 대규모 공동묘지가 인천가족공원 외에 여럿 있다. 납골당, 수목장, 잔디장 등 여러 대안들이 고민되고 있지만 돌아가는 분의 집이랄 수 있는 묘지가 산 사람의 집만큼이나 쉽지 않다. 묘지 마련뿐만 아니라 주변에 성묘객들이 버린 쓰레기들이 적지 않게 문제가 되고 있다. 오랜(?) 추모를 위한 합성섬유 조화(造花)들은 어느샌가 쓰레기로 인근의 야산이나 계곡에 버려진다.

예전 혼례와 장례는 마을의 잔치였다. 가족과 친지뿐 아니라 마을사람들이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함께 음식을 마련하며 설거지도 더불어 했다. 지금의 혼례와 장례에서는 모두가 손님이다. 일가친척마저도 잠깐의 손님이다.

결혼식은 결혼식장에서 알아서 준비해주고 피로연까지 한두 시간이면 끝나버린다. 장례도 빈소 마련에서부터 음식 준비까지 장례식장과 상조회사에서 알아서 해줘 손갈 일이 별로 없다. 조문객 맞이 상차림 물품도 쓰기 쉽고 처리하기 수월한 1회용 접시, 수저_젓가락, 식탁보다. 마지막 인사하는 자리에서까지 쓰레기를 남긴다. 모두가 남은 이들, 앞으로 이 지구에서 살아갈 아이들에게 무거운 짐이다.

종이컵 37억개, 플라스틱컵 47억개, 접시_용기 46억개, 비닐봉투_쇼핑백 255억개, 면도기 1.4억개, 칫솔_치약 1억개, 우산비닐 2억개, 응원용품 6백만개. 2018년 우리나라의 1회용품 사용량이다. 코로나로 1회용 마스크는 말할 것도 없고 1회용 배달음식용기와 포장재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하나뿐인 지구마저 1회용이 될까 걱정이다.

지난해 11월 인천시는 주요 장례식장들과 1회용품 없는 장례문화 조성 업무협약을 맺었다. 장례식장 이용객에게 다회용기 사용을 권장하고 1회용품 사용 자제를 요청하는 내용이 주요 골자다.

환경부도 지난해 12월 충청남도 등과 1회용품 없는 장례식장을 위해 다회용식기 사용 활성화 기반구축을 위한 협약을 진행했다. 이후 연말과 연초 장례식장에 조문갈 일이 몇 차례 있었다. 장례식장에는 여전히 1회용품이 넘쳐났다.

장례식장 관계자와 상주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1회용품 없는 장례식장을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 중 하나는 상주가 근무하는 회사에서 상(喪)을 당한 직원들에게 직원복지 명목으로 제공하는 1회용품들이다. 편리할뿐 아니라 회사 로고가 새겨져 있어 회사홍보용으로 1회용품이 널리 이용되고 있다. 장례식장에서 다회용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세척할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하거나 다회용기 대여체계를 갖춰야 함은 물론 직원복지로 제공되는 장례용품도 변해야 한다.

현대인은 평생을 살면서 수많은 1회용품을 쓰고 플라스틱을 버린다. 분해되는데 수백년 걸리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남기기보다 지속가능한 지구, 기후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을 남기면 어떨까? 상을 당한 직원들에게 고인을 추모하고 기억할 수 있는 나무 한 그루를 제공하면 어떨까? 하나뿐인 지구에서 살다 간 고인과 미래세대를 위해 더욱 뜻깊은 일이지 않을까 싶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아닌 나무 한 그루를 심자!

/장정구 인천녹색연합 정책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