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화장실 수건은 늘 아내가 갈아두는데

그중에는 근래 직장에서 받은 입셍로랑이나

란세티 같은 외국물 먹은 것들도 있지만,

1983년 상주구계서원 중수 기념수건이나

(그때 아버지는 도포에 유건을 쓰고 가셨을 거다)

1987년 강서구 청소년위원회 기념수건도 있다

(당시 장인어른은 강서구청 총무국장이었다)

근래 받은 수건들이야 올이 도톰하고 기품있는

태깔도 여전하지만,

씨실과 날실만 남은 예전 수건들은

오래 빨아 입은 내의처럼 속이 비친다

하지만 수건! 그거 정말 무시 못할 것이더라

1999년, 당뇨에 고혈압으로 장인어른 일년을

못 끌다 돌아가시고, 2005년 우리 아버지도

골절상으로 삭아 가시다가 입안이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가셨어도, 그분들이 받아온 낡은

수건들은 앞으로도 몇 년이나 세면대 거울 옆에

내걸릴 것이고, 언젠가 우리 세상 떠난 다음날

냄새나는 이부자리와 속옷가지랑 둘둘

말아 쓰레기장 헌옷함에 뭉쳐 넣을 것이니,

수건! 그거 맨 정신으로는 무시 못할 것이더라

어느 날 아침 변기에 앉아 바라보면, 억지로

찢어발기거나 불태우지 않으면 사라지지도 않을

옛날 수건 하나가 이제나 저네나 우리 숨 끊어질

날을 지켜보기 위해 저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오래된 수건 몇 장씩은 서랍에 넣어두고 있을 것이다. 언제 받은 것인지도 잊은 채 오랜 시간을 지나다 문득 꺼내게 되는 수건들. 그저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다가 어느 날 불현듯 꺼내 쓰게 되는 것이 바로 수건이다.

시인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기념으로 받았던 예전 수건들이다. 새로 꺼내 쓰는 수건은 또 시간이 지나며 그렇게 낡아간다. 돌아가신 분들이 받아온 낡은 수건들이 한동안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시인은 십 수년도 더 지난 수건을 쓰다가 문득 그 시간을 보냈을 그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의 소멸에도 저리 끈질기게 버티고 있는 수건의 존재를. 수건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시간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권경아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