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기 드문 태극 문양의 낡은 창살 (인천, 송림동)
▲ 보기 드문 태극 문양의 낡은 창살 (인천, 송림동)

골목에 들어가 이집 저집의 '창(窓)'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창문 사진을 찍다가 종종 항의를 받기도 한다. 언젠가 정말 보기 드문 창살을 '발견'했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때마침 집주인이 창문을 여는 바람에 눈이 마주친 적이 있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그대로 뒤돌아 줄행랑쳤다. 집주인 입장에서 보면 별나고 무례한 행동이었다. 사라지는 것에 대한 '기록' 욕심이 과한 탓이다.

창은 시간을 품고 있다. 세월이 지나면 창도 다양한 표정을 지으며 변한다.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면 창은 그 집의 지나온 이야기를 고스란히 들려준다. 몇 년 전 동구 수도국산박물관에서는 재개발된 동네의 주택에서 떼 온 쇠창살을 전시한 적이 있다. 생활상을 담은 유물로서나 장인의 솜씨를 뽐낸 예술품으로나 손색없는 전시품이었다. 예전에 창은 가옥의 멋을 내는 한 요소이기도 했다. 기능과 모양이 천차만별이었다. 오르내리창, 미서기창, 여닫이창, 미닫이창, 들창, 미늘창, 미들창, 돌출창, 봉창, 내닫이창, 뙤창, 엇살창….

창문(Window)의 영어 단어는 '바람구멍'을 뜻하는 wind-eye의 고어 wind-ow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원래 창문은 밖을 보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바깥의 신선한 공기와 빛을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었다. 세균의 천적은 빛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값싼 살균제는 빛이다. 유리가 발명되기 전까지 인류는 빛과 바람을 동시에 조절할 수가 없었다. 창문으로 빛을 받기 위해서는 바람까지 받아야 했고, 바람을 막으려면 빛도 막아야 했다. 비로소 창에 유리를 끼게 되면서 채광과 환기를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유리창은 인간의 수명을 연장하는데 숨은 공신이다.

창문의 모습을 담기 위해 골목을 쏘다니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창은 '마음의 창'이다. 이 창문은 사진 찍다가 줄행랑치거나 봉변당할 일도 없다. 봄이다. 이제 창을 활짝 열어야 할 때다.

/유동현 인천시립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