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4∼28일,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정용일, <삶의 경계 - 生 Ⅱ>, 225×165㎝, 캔버스에 유채, 2021
 정용일, <삶의 경계 - 生 Ⅰ>, 182×265㎝, 캔버스에 유채, 2021
정용일, <삶의 경계 - 生 Ⅰ>, 265×182㎝, 캔버스에 유채, 2021
정용일, <삶의 경계 - 生 Ⅱ>, 225×165㎝, 캔버스에 유채, 2021

전쟁이 터졌다. 어디에 전쟁이 있는가?

전쟁이 도대체 어디에 있느냐고, 전쟁의 혐오스러운 모습이 어디에 있느냐고 우리는 자문했다.

그런데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를, 우리가 마음 속에 그것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알베르트 카뮈-

 

알베르트 카뮈의 페스트 작품은 전염병이 휩쓰는 가운데 고립된 도시에서 재앙에 대응하는 이들의 각기 다른 모습이 묘사된다.

누군가는 '도피적 태도'로, 누군가는 '초월적 태도'로, 또 다른 누군가는 '반항의 태도'로 대처한다.

인천 출신 중견작가 정용일이 이미 창조된 그대로의 세계를 거부하고 절망에 맞서 투쟁함으로써 진리와 행복을 좇는 의지를 주창한다.

<삶의 경계 - 生> 초대기획전이 이달 4~28일 서울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서 열린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개관 1주년 기념으로 마련된 이번 초대전에서 작가는 한국 토속신앙인 무속(巫俗)의 세계를 고대 희랍신화의 영역으로 확장시키고 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실존의 미학이 제시된다.

작가는 한국 전통신화와 무(巫)가 심청과 바리데기 공주 등의 효(孝) 사상을 토대로 한 이승과 저승, 영혼과 육신, 생과 사의 경계 없이 넘나드는 무속적 신앙이라면 희랍신화의 에로스(Eros)와 타나토스(Thanatos)는 삶의 현장에서 생명과 죽음이 공존하는 신화로 해석한다.

신라 설화에 등장하는 처용과 사랑의 신 에로스, 죽음의 신 타나토스를 주제로 공존과 생사의 경계를 시각화함으로써 실존에 대한 냉철한 자성을 이끈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에로스는 육체적·충동적 성(性)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주 전체의 생명력을 관장하는 원초적 힘이자 사랑을 뜻한다.

타나토스는 에로스로부터 생겨나는 에너지이자 죽음을 지향하는 본능인 데스트루도(Destrudo)를 일컫는다. 스스로를 생명이 없는 무기질로 환원하고자 하는 욕구이다. 반대로 에로스는 타자와 자신을 합치시키자 하는 욕구다.

작가는 이런 문제의식을 통찰하며 한민족의 기상과 옛 조상들의 공동체적 삶의 현장을 거친 붓 터치 그리고 투박해 보이는 점과 선으로 표현한다.

이번 초대전은 코로나19가 가져온 변화가 인간 삶의 정서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사각의 캔버스를 통해 본질적으로 사유해 볼 수 있는 공론의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대응하는 현대인의 원초적 생명력인 삶을 위한 투쟁과 반항이 오롯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정용일은 작가노트에서 "자연과 인간의 어우러짐 속에서 중간 세계의 영역인 영혼의 매개체가 보는 인간의 삶, 죽음, 희열, 의지, 고통 등을 점(點)을 사용해 현상적이면서도 몽상적인 느낌으로 마치 홀로그램이 나타나듯 시도했다"고 설명한다.

이어 "그 동안의 작업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무(巫)의 초월성을 바탕으로 한 한국성의 추구였다"며 "어린 시절 일상적으로 체험했던 토속신앙의 깊은 인상이 한국성을 표현하려는 나의 정체성에 큰 영감을 주었다"고 덧붙인다.

/조혁신 기자 mrpe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