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민 수원화성박물관장 취재과정
수원 팔달구 남수로 거주지 첫 확인
▲ 수원화성박물관 한동민 관장은 수원시 팔달구 남수로 202번지가 항일운동가 김향화와 정청산이 서로 다른 시기에 거주했던 것으로 확인했다고 1일 밝혔다.

현재 수원시 팔달구 남수로 202번지에 위치한 건물이 일제시대 당시 항일운동가 2명이 서로 다른 시기에 거주했던 곳으로 처음 확인됐다.

이 곳은 1919년 수원 기생의 3·29 만세 시위를 이끌었던 김향화와 1930년대 무산계급 소년운동으로 항일운동을 벌였던 정청산의 거주지였다. 불꽃처럼 산 항일운동가 2명이 거주했던 시기는 다르지만 같은 집에서 생활해왔던 사실이 눈길을 끈다.

수원화성박물관 한동민 관장은 '수원을 걷는다 수원독립운동 현장을 찾아서'의 책을 저술하기 위해 취재하는 과정에서 김향화와 정청산의 거주지를 확인했다고 1일 밝혔다.

한동민 관장에 따르면 1887년 서울(한성부)에서 태어난 김향화는 1913년 결혼했다가 그 다음해 이혼한 후, 어머니, 오빠, 여동생과 함께 거주한 곳이 남수동 남수리 202번지였다. 당시에는 한옥 집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곳은 수원읍내의 유력한 가문인 수원 최씨 최동우의 5남 최은의 소유였다. 김향화는 이곳에서 1916년까지 거주하다가 남수리 201번지로 이사를 갔다. 남수리 201번지에서 생활하다가 1919년 수원 기생의 3·29 만세 시위를 이끌었다. 정부는 2009년 항일운동 공적을 인정해 김향화에게 대통령 표창을 추서했다.

이후 남수리 202번지는 소유주 최은 가족이 살다가 이사간 뒤 1922년 5월 화성시 발안 출신 문녹주씨로 소유권이 이전됐다.

이후 1909년 팔달구 남창동 남창리 196번지에서 태어난 정청산이 이 곳으로 이사와 살다가 아버지 사망으로 1930년 호주가 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후 정청산이 옥고를 치룬뒤에도 가족이 거주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청산은 1930년대 어린이잡지 별나라에서 작품활동을 하며 소년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을 펼쳤던 인물이다. 정청산은 1935년 용을소년회 활동과 신건설사사건으로 옥고를 치룬 항일 공적을 인정 받아 지난해 8월 정부로부터 애족장 포상을 받았다. 현재 이곳은 3층 상가 건물이 들어서 있다.

수원화성박물관 한동민 관장은 “서울 태생에 김향화지만 수원에서 지낸 시간들이 많았고 그의 업적 또한 수원에서 이뤄졌다. 그가 수원으로 내려와 독립운동을 하기까지 지낸 집과 흔적들을 추적해 왔다. 그 결과 김향화가 남편 정도성과 살던 집이 있던 곳, 또 가족과 함께 지내던 집, 독립운동을 앞두고 자취를 한 집까지 김향화의 흔적들을 찾아냈다”며 “김향화 뿐 아니라 정청산, 김세환, 김노적 등 수원지역 독립운동가들의 생가를 발굴하고 유적지를 탐방할 수 있도록 명소화하는 방안들을 추진 중에 있다”고 밝혔다.

/김기원·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