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처 275명 포함 대통령표창
인천청년동맹 등 활동 공로 인정
유족 “늦게나마 인정 여한 없어”

일제강점기 인천 대표 항일운동단체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친 김응태(사진) 지사가 나라를 위해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는다.

김 지사는 세상을 떠났지만 유족들이 역사학자의 도움을 받은 끝에 그의 활약이 담긴 역사적 기록을 찾았다.

국가보훈처는 제102주년 3·1절을 맞아 김 지사를 포함해 275명을 독립유공자로 포상했다고 25일 밝혔다. 이 중 김 지사는 유일한 인천 출신으로 대통령표창을 받는다.

김 지사는 1900년 6월 일본신사가 세워진 중구 답동 27(현 인천상업여자고등학교 후문)에서 태어났다. 이 일대는 인천항 근처로 일본인이 운영하는 정미소가 많았다. 그는 가등(가토오)정미소에서 철공직으로 일했으며 1919년 파고다공원에서 열린 3·1만세운동에 참가해 경찰의 감시를 받았다.

김 지사는 1925년 인천철공조합 이사를, 1927년 인천청년동맹의 화정반 반장을 맡았다. 1929년에는 인천철공노동조합 설립 주동자 명단에 이름이 올랐고 이듬해 1월, 가등 정미소 파업 주도와 사상단체 활동 혐의로 10개월간 복역했다.

훗날 이 파업은 인천 최대 정미소 파업으로 평가 받았다. 이후 주변 동료들의 도움으로 작은 고철상을 차려 생계를 꾸려나갔는데 일제 경찰이 장물 누명을 씌어 다시 2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김 지사는 1957년 10월 작고했다.

유족으로는 장남 김정일(97) 옹과 차남 김정윤(83) 옹이 생존해 있다. 이한구 전 제6·7대 인천시의원이 김정일 옹의 넷째 사위다. 이 전 시의원은 지난 2년간 역사학자의 도움을 받아 자료를 수집해 국가보훈처에 김 지사에 대한 서훈 신청을 했다.

김정일 옹은 “어렸을 적 선친이 순사의 감시와 주변 이웃의 눈총을 받다가 감옥에 가야했던 두 번의 시기가 슬펐다”며 “해방 이후에도 74년간 가슴에 묻어두다가 뒤늦게 선친의 기록을 찾아 독립유공자로 표창받아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김 옹은 다음 달 1일 인천시 3·1절 기념식에 참석해 유족 대표로 대통령 표창을 받는다.

/유희근 기자 allways@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