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3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의 선박 스페르베르호가 인도네시아에서 출발하여 일본의 나가사키(長崎)로 항해하다가 폭풍을 만나 제주도 해안에 표착했다. 배는 폭풍에 좌초되어 크게 파손되고 선원중 36명이 생존했는데 그중 한 명이 헨드릭 하멜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반 구금상태로 힘들게 지내다가 13년 후인 1666년 애초의 목적지인 나가사키로 탈출에 성공했다. 이들을 조사한 일본 당국은 조선정부에 나머지 생존자들의 송환을 요청해와 7명을 일본으로 보내주었다.

▶우리나라를 서양(유럽)에 처음으로 알린 『하멜표류기』는 동인도회사에 16년 동안의 급료를 청구하기 위해 제출한 보고서였다. 하멜로부터 보고서를 받아본 회사는 그때까지만 해도 미지의 나라로만 알려진 조선의 실상을 비교적 정확하고 흥미롭게 묘사했기에 암스테르담에서 출판했고 이어서 프랑스, 독일, 영어판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하멜이 태어난 고향은 네덜란드의 중앙부에 위치한 호르컴이다. 하멜이 유배생활을 오래했던 전남 강진과 자매결연을 맺은 호르컴에서는 20여년 전 시내 중심가에 하멜의 동상을 세우고 기념관도 만들었다. 당시 해외 여행 붐과 함께 유럽을 찾는 한국인들을 유치하여 하멜을 앞세워 호르컴을 선전하려는 시장의 열의가 돋보였다. 그후 몇차례 하멜의 고향을 찾아가 보니 한국인들의 발자취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하멜이라는 당시 젊은 선원이 생전에는 유럽에 조선이라는 나라를 그리고 35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자신의 고향을 한국인들에게 안내하고 있어 그가 쓴 <표류기>의 영향을 실감할 수 있었다.

▶2002 FIFA 월드컵의 신화를 만든 히딩크 감독도 네덜란드와 한국을 축구로 연결한 인물이다. 월드컵 조직위의 자문역을 맡고 있으면서 가깝게 알게 된 히딩크를 2003년 아인트호벤에서 친지들과 함께 가서 만났다. 그는 박지성과 이영표 선수를 막 스카우트해서 아인트호벤 팀에 합류시킨 직후인데 필자가 멀리까지 찾아와 주었다며 그날 저녁 프랑스 옥세르 팀과의 경기에 두 선수를 처음 출전시켰다. 그는 한국인이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잘할 때와 못할 때 차이가 심해서 힘들었다고 했다.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이 영국의 런던을 제치고 유럽 최대의 주식거래 도시로 도약했다. 브랙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EU와 영국이 결별한지 한달만에 벌어진 일이다. 수년전부터 파리와 프랑크푸르트가 런던을 대신해 유럽의 금융센터를 노리고 있었으나 일단 증권거래에서 암스테르담이 승자가 되었다. 네덜란드는 하멜이 제주도에 표류하기 반 세기 전인 1602년 세계 최초로 증권거래소 문을 열었는데 420년 후에 유럽 최대의 증권거래소로 등극한 셈이다.

/신용석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