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은 현실이 됐다. 방문을 닫으면 숨이 턱 막히고,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심장이 뛰고 속이 매스껍다. 사방이 빙빙 돈다. 비좁은 건물 안에서 불에 탄 주검을 볼 때마다 털이 쭈뼛 선다. 그리곤 몸이 굳는다.

처음엔 그저 직업적 숙명이겠거니 했다. 그러나 몇년이 지나도 이런 심리 불안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말로만 듣던 공황장애라는 것을. 그는 말했다. “불길 속에서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저들처럼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늘 교차해요.”

평소 알고 지내는 소방관 A씨 얘기다. 그는 이런 트라우마를 겪는 동료가 수도 없이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료 하나를 건넸다. 지난해 5월부터 11월까지 분당서울대병원이 경기도 소방공무원을 상대로 진행한 심리상담 사례였다.

결과는 심각했다. 상담 사례 3774건 중 639건이 우울증을 호소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162건은 수면장애였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도 157건이나 됐다. 또 105건은 불안장애, 59건은 극단적인 상황(자살충동)을 상담했다.

심리 불안을 호소한 소방관 중에서는 화재 진압 업무를 보는 이들이 1309건으로 가장 많았다. 구급대원과 구조대원이 각각 634건, 183건을 차지했다. 직급별로는 소방사가 1018건, 소방위 792건, 소방교 709건, 소방장 651건, 소방경 258건 등의 순이다. 관서별 상담 건수는 용인소방서가 226건으로 1위였다. 다음은 김포소방서 199건, 고양소방서 157건, 포천소방서 153건 등의 차례다.

특히 4번 이상 계속 상담을 받은 소방관이 207명, 10번 이상 심리 불안을 호소한 소방관도 36명이나 됐다. 이들은 대부분 영유아 사망 현장을 목격하거나, 대형 재난 현장에서 목숨을 바쳐 사투를 벌인 소방관이다. 일부는 구급 현장에서 폭행당하기도 했다.

한 소방관은 과거 부하 직원의 죽음을 두고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해당 소방관은 현재 병가를 내고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다. 우리는 소방관의 활약상을 자주 접한다. 그러면서 이들을 영웅이라 치켜세운다. 반면 이들의 아픔엔 관심이 적다. 때로는 금세 잊는다.

소방관은 전화 한 통에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 다른 사람을 구하러 달려간다. 거기엔 조건도, 대가도 없다. 소방관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들의 아픈 마음을 보듬고 치유하는 건 이제 국가와 시민의 몫이다. 영웅도 사람이기에.

 

/황신섭 경기본사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