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에서는 새해를 세 번 맞이한다. 첫 번째는 보통 1월1일 일반적으로 전 세계가 맞이하는 새해이다. (그레고리력 Gregorian Calendar) 대통령이 12월31일 밤 12경 TV에 등장하여 10, 9, 8, 7, 6, 5, 4, 3, 2, 1을 세고 샴페인 잔을 들고 새해 축하 인사를 한다. 인사말이 끝나면 아파트 단지 여기저기서 폭죽이 터지고 불꽃놀이가 시작되어 정신이 없다. 우리 집에서도 샴페인 잔을 들고 창가를 서성였는데 애들이 어렸을 때는 아파트 공터로 나가서 같이 불꽃놀이를 즐겼었다. 경제적으로 좀 어려워도 불꽃놀이나 술에는 인심이 후하다. 보통 12월25일 성탄절을 우크라이나나 러시아에서는 가톨릭 성탄절이라 하고 새해 1월7일을 성탄절이라 한다.

두 번째 새해는 1월14일 율리우스력(Julian Calendar)으로 새해이다. 우리나라 구정이나 추석에 수백만의 귀향 행렬을 보며 부러워했는데 여기서는 우크라이나 새해(1월 14일)와 부활절에 수백만이 고향으로 가는 날이다. 올해는 코로나 사태로 여기서도 고향을 찾는 이가 많이 줄었다. 통계상 농촌 거주 인구를 30% 정도로 보지만 인구 2만 이하의 소도시에서는 집집마다 가축과 작물을 키우고 교통이 좋지 않아 시골이나 다름없다. 그렇게 보면 4200만 인구의 절반 이상은 시골에 사는 셈이다. 우크라이나 새해에 아는 형님댁에 가면 온갖 음식을 준비하고 동네 사람들이 모여 덕담을 나누고 사마곤이라고 집집마다 담그는 독주를 꺼낸다. 2박 3일 술에 절어 지내다 돌아올 때는 당신들이 수확한 양파, 감자, 당근, 달걀, 호박, 마늘, 집에서 잡은 생닭 등을 신문지에 돌돌 말아 주시고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신다.

세 번째 새해는 여기 사람들이 아시아 새해라는 음력 설날이다. 인천 앞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인천시 중구 신흥동 1가 6번지. 빈한한 마을에도 설날은 찾아오고 어머님이 들기름으로 만드셨던 음식이 그렇게 맛있고, 고소했다. 설날 전에는 연례행사 같이 가던 목욕탕, 누가 이름을 붙였는지 절묘하고 기묘한 처녀목욕탕. 국민학교 입학 전에는 어머니를 따라가 2시간 이상 손발이 쪼글쪼글 부르터서 나왔고 국민학교 입학하고 형하고 갈 때는 어머님이 하셨던 말씀, “2시간 이상 있다 완전히 때 밀고 오너라.” 며칠 전 읽은 책 주인공 이름은 가물가물한데 50여 년이 지난 오늘날도 생생히 기억나는 신흥동 친구들 이름 광배, 선영이, 영철이, 한실이, 인배형, 영일이, 광일이, 승록이, 팽이 썰매 연 등을 장인같이 잘 만들던 개똥이 형.

우리는 설날이면 입구 첫째 집부터 동네를 한 바퀴 뺑 돌아 세배를 하고 세뱃돈을 챙겼다. 그 동네는 집집마다 보통은 4-5명, 영철이네 집은 애들이 7명이었다. 애를 낳으면 자기들끼리 큰다. 딱지치기, 구슬치기, 다방구, 팽이치기, 길건너기, 숨바꼭질, 기둥말타기, 제기차기, 비석치기, 연날리기, 자치기, 땅따먹기, 찜뽕 등 놀이가 무궁무진했다. 동네 옆 해광사는 우리의 놀이터였는데 놀다 말고 “용가리다”하면 혼비백산 줄행랑을 쳤다. (그 스님은 아이들이 놀면 가끔 나와 우리를 혼냈다) 설날 세뱃돈이라야 5원, 10원짜리 동전이었는데 어느 집에서는 야박하게 1원짜리 동전을 주기도 했다.

우리는 한실이네 셋방살이를 했는데 한실이네 7식구, 우리 집 6식구, 아랫방 헌일이네 6식구 모두 19명이 재래식 화장실이 한 개인 20여 평 집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술을 좋아하시던 한실이 아버님은 아마도 미리 많은 동전을 준비하신 것 같다. 줄지어 오는 아이들 싫어하는 기색 없이 별명을 부르시며 세뱃돈과 사탕, 과자도 주셨다. 여기서 설날을 맞이할 때면 온갖 생각이 나 옛일을 흉내 내서 집에서 키우는 숙주나물도 하고 두부도 장만하고 전도 부치지만, 해바라기 식용유로 만드는 음식은 어머님의 맛이 아니다.

어머니는 그 어렵던 시절에도 설날에는 떡국을 준비하시고 고기 한 두 근을 장만하시어 수제비와 고구마가 거의 주식이던 시절에 우리 네 형제자매를 키우셨다. 어머니,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떡국도 그립고요.

 

/김석원 키예프국립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