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압박에서 해방된 지 76년을 맞는다. 그런데도 아직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발굴은 '현재진행형'이다. 조국의 광복을 위해 싸우다 스러져간 영령들 앞에 고개를 들지 못할 뿐이다.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벌인 이들을 기리는 일은 후손으로서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숨어 있는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자료를 찾지 못했다며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지 않은가. 자괴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 독립운동사연구소는 그런 의미에서 정말 남다르다. 이 연구소는 2019년부터 4차례에 걸쳐 독립유공자 2060명을 발굴해 정부에 포상을 신청했다. 일개 대학 부설 연구소에서 한 우물을 파며 엄청난 숫자의 독립유공자를 찾아낸 일도 그렇지만, 그 열정은 이루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뜨겁다. 단일 기관에서 이렇게 많은 독립유공자를 추적해 밝힌 곳도 없다. 정부 당국도 하기 어려운 일을 벌여오는 연구소에 찬사를 보낸다. 연구소에 공로를 치하하며 어떤 '상'을 줘도 아깝지 않으리라.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독립운동사연구소가 또 한번 결실을 거두었다. 송도고교 출신으로 일제에 맞선 인물 73명을 새로 발굴해 세상에 밝혔다. 송도고가 배출해 정부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았거나 포상 신청 대상인 인물은 지금까지 97명에 이른다. 학교 자체가 '독립운동의 산실'이란 평가를 받는다. 연구소는 이번에 찾아낸 이들의 공적을 정리해 곧 국가보훈처에 독립유공자 포상을 신청하기로 했다. 이미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송도고 출신 인물은 11명. 연구소가 새롭게 찾은 송도고 독립운동가들은 '한영서원 창가집 사건'(1915년)과 '개성격문 사건'(1932년) 등을 통해 반일 활동에 투신했다. 일제 강점기 송도고보 출신으로 반일 운동을 펼치다 체포돼 순국하거나 고초를 겪은 이들은 여느 학교 출신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많다.

송도고는 1906년 10월3일 개성에서 개원한 한영서원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리고 1909년 4월 소학과 4년, 고등과 3년으로 편성해 1910년 제1회 졸업생 10명을 배출했다. 1950년 학교법인 송도학원(松都學園)으로 새 출발한 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1952년 인천(중구 답동)으로 피란해 다시 개교했다. 송도고 설립자는 친일에 빠진 윤치호(1865~1945)로 알려졌지만, 지난해 연구소에서 진짜 설립자는 윤치호가 아닌 미국인 목사 왓슨이란 자료를 찾아 밝히기도 했다.

연구소 측은 3·1절 102주년을 앞두고 독립유공자 316명을 발굴해 국가보훈처에 포상을 신청할 계획이다. 우리 독립을 위해 오롯이 투쟁에 앞선 선구자들의 삶이 새롭게 조명되길 바란다. 다시 한번 연구소 측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이문일 논설위원 ymoon58@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