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이전의 개성공단 전경. /사진 제공=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5년 전인 2016년 2월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개성공단이 전면 폐쇄됐다. 당시 125개 입주 기업들은 공장과 기계장비, 사무실 집기를 고스란히 남겨둔 채 군사분계선을 넘어왔다.

그리곤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곧바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속에 하루하루를 버텨나갔다. 그 사이 입주 기업의 14%가 문을 닫거나 휴업했고, 10곳 중 7곳 이상이 매출 감소에 시달렸다. 입주업체들이 입은 피해규모는 1조5천원에 이른다.

기업들은 수차례 공단 재개를 촉구했고, 공장을 둘러보겠다며 방북 요청도 거듭했지만 정부는 이렇다할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해 6월 16일, 공단 내 남북연락사무소 건물이 폭파됐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입주기업 대표들은 지난 9일 청와대 앞에서 정부의 공단 재개 노력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공단 재개를 못한다면 차라리 지금이라도 공단을 청산하고 보상이나 실시하라”고 절규했다.

이에 대해 통일부는 “안타깝다, 남북대화와 교류협력이 복원되고 공단 재개를 논의할 시간이 오기를 희망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되풀이했다.

남북경제협력과 개성공단의 역사

남북 간 경제협력은 그 가능성을 타진하던 70-80년대를 지나 노태우 정부 때인 1988년 7.7 선언으로 첫 단추를 뀄다. 남북대화와 북방정책의 시발점으로 평가받는 7.7 선언을 통해 '남북교역 문호개방, 북한무역 용인' 등의 정책이 발표되면서, 92년 남북 간 위탁가공교역, 94년 남북경협 활성화 조치가 이어졌다.

96년 북측의 잠수함 침투사건으로 한 때 동결됐던 남북경협은 1998년 고(故) 정주영 현대회장이 소 1001마리를 몰고 방북한 이후 금강산 관광 등을 통해 극적으로 재개됐다.

그해 대통령으로 취임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6월 분단 사상 처음으로 남북 간 정상회담을 갖고 6.15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이 선언에서 “남과 북은 경제 협력을 통하여 민족 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킬 것”을 합의했다.

이후 개성공단 건설 사업은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6.15 공동선언 두 달 뒤인 8월에는 현대아산과 북측이 '공업지구 개발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했다.

2004년 12월 시범단지에서 생산된 첫 제품이 반출됐다. 공단이 전면 폐쇄된 2016년까지 1백만 평 부지 위에 125개 업체가 입주해 5만4000명의 북측노동자와 1000명의 남측노동자가 함께 근무하며 누적생산액 32억 달러(3조5천억 원)을 기록했다.

 

정치 상황에 따라 부침이 계속된 개성공단

개성공단은 한반도 정치상황 변화에 따라 부침을 거듭했다. 2009년 3월 이북의 체제를 비판한 현대아산 직원이 137일간 억류됐고, 2010년 3월 천안함 피격 사건에 이은 5·24 조치, 같은 해 11월 연평도 포격 사건을 겪으며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다.

2013년 4월에는 한미 연합 군사훈련과 언론 보도를 문제 삼은 북측이 남측 직원들의 입북을 거부하고 북측 노동자를 철수시켰다. 정부도 개성공단관리위원회 직원들을 전원 철수시키는 등 강경하게 대치하며 7차례에 걸친 협상을 벌인 끝에 166일 만인 9월 16일 정상화됐다.

2016년 2월 10일, 박근혜 정부는 북측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을 빌미로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선언했다. 개성공단을 통해 북측에 유입되는 자금이 무기개발에 전용된다는 이유에서였다.

 

문재인 정부 이후에도 재개되지 못한 개성공단

보수정권이 퇴진하고 개성공단 재개를 공약으로 내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는 판문점 4.27 선언과 9.19 평양 선언을 통해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를 약속했다. 김정은 총비서는 2019년 신년사에서 '조건 없는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 재개'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북미관계가 걸림돌이었다. 제1차 북미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2차 회담을 통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회담이 합의서도 채택하지 못한 채 무산되자 개성공단 재개도 물거품이 됐다.

급기야 남북 합의 불이행과 남측의 탈북단체 대북전단 살포 등에 불만을 품은 북측은 2020년 6월 16일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말았다.

 

미국, 유엔사와 한미워킹그룹 앞세워 남북교류 막아

북미관계가 냉온탕을 오가는 동안 미국은 유엔사령부(유엔사)와 한미워킹그룹을 이용해 남북교류를 방해했다.

6.25 한국전쟁 발발 직후 결성된 유엔사는 미군을 중심으로 구성된 통합군사령부로 출발했다. 그런데 미국이 일방적으로 유엔사로 명칭을 바꾸고 유엔의 군대 행세를 해왔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에도 유엔사는 해체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정전협정관리와 비무장지대 경계를 맡고 있다.

유엔사령관은 주한미군사령관이 겸직하고 있으며 유엔사 간부도 미군이 임명한다. 사실상 미국의 군대인 셈이다. 2018년 9월 로즈마리 디카를로 유엔정무담당 사무차장은 “유엔사는 유엔에 딸린 기구나 조직이 아니며 유엔의 지휘나 통제도 받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1978년 11월 한미연합사령부가 창설되자 유엔사는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연합사령부에 넘겨준 뒤, 유명무실한 상태로 남아있었다. 그러다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교류가 활발해지자 슬그머니 되살아나 노골적으로 남북교류를 틀어막는데 동원되고 있다.

2018년 12월 우리 정부는 북측의 독감 확산을 막기 위해 타미플루 20만 명분과 신속진단키트 5만개를 지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약품을 실은 트럭이 군사분계선을 넘을 수 없었다. 유엔사가 “약품은 통과할 수 있지만 트럭은 안 된다”며 가로 막아 결국 지원이 불발됐다.

2019년 6월에는 독일 대표단의 비무장지대( DMZ)방문을 막아섰고, 그해 8월에는 김연철 전 통일부장관의 대성동마을 방문을, 2020년 1월에는 한국군 장성들의 DMZ 방문을 불허했다.

한미워킹그룹은 한국과 미국 정부가 남북 관계와 대북 제재 등을 조율하기 위한 협의체로 2018년 11월 발족했지만, 사사건건 남북교류를 방해하고 나서는 바람에 한반도 평화의 걸림돌로 지목돼왔다. 시민단체들은 '신(新)조선총독부'라고 꼬집기도 한다.

 

바이든 정부 이후 개성공단 재개 가능성

지난 1월 20일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했다. 때마침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입안한 정의용 외교부장관도 2월 9일 취임했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의 향후 대북 정책에 대한 예측은 낙관론과 비관론으로 갈린다.

북미관계를 낙관하는 측은 시스템 외교와 우방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바이든 대통령이 우리 정부의 대북평화정책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바이든 정부의 참모들이 대북관계나 핵무기 협상의 전문가들로 꾸려진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반면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웬디 셔먼 국무부 부장관, 커트 캠벨 백악관 아시아정책 총괄 조정관 등 외교참모진들과 월리엄 번스 CIA 국장의 과거 발언을 예로 들며, 북측에 강경한 태도를 보일 것이라는 분석도 상당하다. 바이든 정부가 인권문제에 민감하다는 부분도 신경이 쓰이는 대목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정의용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주어진 시간 내에 성과를 내기 위해 (남북 평화프로세스를) 서두르지 말라”고 당부했다.

당장 눈앞에 다가온 난제가 3월 실시 예정인 한미연합 군사훈련이다. 북측에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한미연합훈련이 실시될 경우, 북측은 미사일 발사 등 군사행동으로 대응해 자칫 북미관계가 강대강으로 빠져들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미국의 간섭에서 벗어나 우리 민족의 힘으로 개성공단 재개해야

개성공단 재개를 주장하는 대북전문가들은 더 이상 미국의 눈치를 보거나 끌려 다니지 말고 주도적으로 남북관계 개선과 경제교류에 나서야 한다고 문재인 정부에 주문한다.

이성재 인천자주평화연대추진위원회 상임대표는 “대한민국은 세계 6위의 국방강국이자 세계10권의 경제력 강국”이라며 “더 이상 미국의 눈치나 살피는 심기외교와 패배주의에서 벗어나 한미관계를 재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 첫 번째 고리로 3월로 예정된 한미연합 군사훈련 중단을 선언하고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을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재강 경기도 평화부지사는 지난해 12월 21일 열린 '개성공단 재개 공감대 확산 온라인 토론회'에서 “개성공단을 재개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승인이나 대북제재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진향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이사장은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상징인 개성공단을 조속히 재개해야 한다”면서 “북측의 원부자재로 제품을 만들어 북측에 공급하는 새로운 방식을 과도기적으로 적용하면 유엔 제재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정찬흥 논설위원 report61@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