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성극장 영화 간판실.

고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안경을 쓰고 있다. 눈이 나빠진 원인 중에 극장 탓도 있다. 고교 입시를 치른 후 두어 달 공백이 있을 때 송현동 양키시장에 새로 개관한 오성극장에 자주 갔다. 시력이 떨어져 안경 없이는 스크린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상태였다. 다시 회복되겠지 하고 안경을 맞추지 않았다. 대신 형이 썼던 다리 부러진 안경에서 렌즈만 빼서 '괴도 루팡'처럼 한눈에 대고 영화를 보았다. 그 이후 회복할 수 없는 심각한 '근시 인생'을 살고 있다.

오성극장은 별이 다섯 개, 오성(五星)이 아니었다. 사장 오(吳) 씨가 구축하고 싶어했던 성(城), '오성(吳城)'이었다. 1971년 개관한 이 극장은 이름만큼이나 건설 과정도 흥미롭다. 양키시장은 비를 막을 수 있는 거대한 지붕이 간절했고 극장은 중심가에 너른 부지가 필요했다. 오성극장은 양키시장을 올라타고 공중에 철옹성처럼 건립되었다. 오성은 '씨네팝' '애관2'로 운영되다가 지난 2003년 4월 11일 스크린의 불이 완전히 꺼졌다.

얼마 전 20년 가까이 폐관 상태인 오성극장 안을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다. 은막을 향해 바로 빛을 내뿜을 듯한 영사기, 여기저기 놓여 있는 예고편 영화 필름과 광고 필름들. 그리다 만 대형 영화 간판과 다양한 색깔의 페인트통들. 구석에 어지럽게 쌓인 집기들만 아니면 지금도 상영 중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반백 년 시간의 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오성은 오 씨의 성이 아니라 우리들의 고성(古城)이다. 극장은 머지않아 양키시장이 철거되면서 함께 사라질 처지에 놓였다. 기억을 생생하게 하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공간이다.

혹시 우리의 눈이 보물을 고물로 보고 있는 고도 근시가 아닌지. 근시안적 시각으로 개발청사진을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남의 안경으로 우리의 환경을 바라보고 있지 않은지. 지금 정밀 시력 검사를 받아야 할 때다. 한번 망가진 시력은 회복하기 어렵다.

/유동현 인천시립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