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주체로 거듭나려는 '실존의 몸부림'
▲ 영화 '빠드레 빠드로네' 중 아버지가 아들 가비노를 때리는 장면.

“난 네 아버지고, 주인이야.”

아들 가비노가 침대에 누운 채 꿈쩍도 하지 않자, 화가 난 아버지는 버럭 소리를 지른다. 처음으로 복종을 거부하며 반항하는 아들의 모습에 당황한 아버지는 '주인과 노예' 관계를 다시금 아들에게 각인시키며 권위를 내세운다. 오랜 세월 대를 이어 내려온 전통적인 가부장제 틀 속에 갇힌 아버지로서는 가장의 절대적인 권위에 도전하는 아들의 행동이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다.

제목이 이탈리아어로 '내 아버지, 내 주인(Padre Padrone)'의 뜻을 지닌 영화 '빠드레 빠드로네'(1977)는 문맹의 양치기에서 독학으로 언어학자가 된 가비노 레다의 동명 자서전을 각색한 이탈리아 거장 타비아니 형제의 대표작이다. 감독은 엄격한 가부장제 사회 속 부자(父子)의 '주인과 노예' 관계에 초점을 맞춰 아들 가비노가 절대적인 존재로 군림해 온 아버지를 극복하고 자립적인 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다큐와 극영화의 결합을 통해 절묘하게 그려내었다. 또한 사운드 몽타주 등 독특한 형식으로 작품성을 더하며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국제영화평론가상을 동시에 수상하는 영예를 얻었다.

타비아니 형제(Paolo Taviani, Vittorio Taviani) ‘빠드레 빠드로네’ 영화 '빠드레 빠드로네' 중 아버지에게 맞선 가비노가 집을 떠나기 전 용서를 구하는 장면.
타비아니 형제(Paolo Taviani, Vittorio Taviani) ‘빠드레 빠드로네’ 영화 '빠드레 빠드로네' 중 아버지에게 맞선 가비노가 집을 떠나기 전 용서를 구하는 장면.

부자(父子)의 관계를 통해 드러낸 '지배와 피지배'의 권력관계

실제 주인공 가비노 레다가 직접 영화에 출연하여 자신이 만든 회초리를 아버지 역을 맡은 배우에게 건넨다. 이어 회초리를 건네받은 배우가 초등학교 교실 안으로 쳐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아버지가 교사에게 강압적인 어조로 아들 가비노를 데려가겠다고 말하자, 겁에 질린 어린 가비노는 그만 선 채로 오줌을 싸고 만다. 아버지에 의해 교실에서 끌려나온 순간부터, 가비노는 줄곧 노예 같은 삶을 살게 된다. 황량하고 척박한 사르디니아 섬의 산중턱에 홀로 남아 문명과 동떨어진 채 양떼들과 생활하는 끔찍한 양치기의 삶 말이다. 적막한 목장에 죽음의 벨 같은 종소리가 울릴 때, 어린 가비노는 바위 위에 앉아 앞뒤로 몸을 흔든다. 그리고 생각한다. 존재하기 위해서… 그의 '실존의 몸부림'은 청년이 되어서도 이어진다. 암울한 종소리가 울릴 때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그의 내면을 깨운다. 양 두 마리와 낡은 아코디언을 교환한 가비노는 아코디언을 벗 삼아 연주하며 내면과 대화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가부장제 속 아버지와 아들의 '주인과 노예' 관계를 통해 전 사회에 만연한 '지배와 피지배'의 권력관계를 암암리에 드러낸다. 즉, '주인과 노예'의 관계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넘어 지주와 농노, 도시와 시골, 군대와 군인, 그리고 국가와 국민의 관계로 확대되는 일련의 계급구조를 예시한다. 영화는 특히 소리를 통해 계급적인 모순과 대립을 극렬하게 보여준다. 음악소리는 바로 지배자의 절대적인 권위를 상징하는 종소리에 대항하는 피지배자의 자유의 외침이자, 혁명의 구호인 것이다. 종소리가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에 묻히는 순간, 마침내 가비노는 절대자 아버지를 극복하고 자유로운 주체로 거듭난다.

영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말한다. “우리는 주어진 국가나 사회에 맹목적으로 던져지면서 훈육되는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반박한다. 인간은 “자신의 현재 모습을 부단히 넘어갈 수 있는 자유를 가진 존재”라고. 인간의 '실존의 몸부림'은 오늘도, 내일도 이어진다. 완전히 극복될 때까지…

/시희(SIHI) 베이징필름아카데미 영화연출 전공 석사 졸업·영화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