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민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시작한 공유냉장고가 새길을 내고 있다. 2018년 1호점을 개설한 이후 벌써 24호점이 문을 열었다. 공유냉장고는 일반적인 '나눔'에서 점차 '공유'로 확장해 가는 공동체의 진화과정을 한눈에 보여준다. 시작은 흔히 볼 수 있는 나눔에서 비롯됐다. 마을 한켠에 비어 있는 냉장고를 마련하고, 누군가는 각종 음식과 반찬들을 가져다 차곡차곡 쌓는다.

음식이 필요한 사람 누군가는 이 음식으로 배를 채운다. 공유냉장에는 넣을 수 있는 음식과 넣을 수 없는 음식이 있다. 채소와 식재료, 반찬, 통조림, 곡류, 음식점 쿠폰 등은 넣을 수 있지만,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과 약품, 건강보조식품은 넣을 수 없다. 냉장고마다에는 운영자가 한 사람씩 지정돼 관리를 맡는다. 처음 운영 당시에는 예기치 못한 어려움도 있었다. 한 사람이 지나치게 많은 음식을 가져간다거나, 운영자만 음식을 넣고 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주민들도 스스로 공유를 실천하기 시작했다. 채소를 파는 주민이 새벽에 좋은 물건으로 우선 채웠고, 요리를 좋아하는 주민들은 일부러 더 많은 음식을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공유냉장고를 통해 마을은 하나의 공동체로 기적처럼 소생했다. 그렇게 3년, 서서히 느릿느릿 그러나 꾸준히 힘을 보태가며 올들어 24호가 탄생했다. 코로나19로 어려운 사람들의 처지는 더욱 어려워졌다.

도내 사정 또한 예외는 아니다. 도움의 손길이 줄어들어 7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고, 자원봉사자 수도 50% 이상 급격히 줄어들었다. 공유냉장고는 비로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내면서 영감을 불어 넣어주고 있다.

'나눔'은 갖가지 방식으로 진화한다. 수원 일부 지역에서는 한국야쿠르트 지점과 주민들이 협력해 '저소득, 홀몸 어르신 안부확인 사업'을 벌이고 있다. 용인, 시흥 등에서는 여럿이, 각자 집에서 반찬을 만들어 취약계층을 돌보는 사업이 한창이다. 평택에서는 '드라이브 스루'를 통해 음식을 전달하기도 한다.

이런 나눔, 공유는 한마디로 자선과 다르다. 가진 사람이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게 아니라 부유하고 가난하고를 떠나 모두 함께하는 방식이라야 공유라 이름할 수 있다. 공유냉장고가 단순한 나눔을 넘어 차별과 혐오의 벽을 허무는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