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뚜레에 코를 꿰인 소는 고삐를 쥔 주인에게 순응할 수밖에 없다. 속박의 굴레를 벗어나려면 코가 찢어지는 고통을 감수하고 한바탕 몸부림쳐야 한다. 코를 꿰여 길들여진 소가 자유를 찾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 민족은 일본제국주의에 코를 꿰인 역사가 있다. 일제가 하라는 대로 해야 했고 일제가 가라는 대로 가야 했다. 멀쩡한 우리말을 두고 일본말을 써야 했고 원하지 않는 전쟁에 동원돼야 했다.

사람은 자주권을 추구하는 존재다. 우리 민족은 일제의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을 이어갔다. 영화 '말모이'에 잘 그려져 있듯이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사전을 만들려 했다. 강제 징집되어 배치된 일본군대에서 탈출하여 독립군이 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에도 우리 민족의 치열한 투쟁이 이어졌기에 우리는 해방 후 떳떳이 항일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봉오동 전투'와 같은 영화에서 자긍심을 갖기도 하는 것이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75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과연 코뚜레를 벗어던진 자유의 나라에 살고 있는가. 다른 것은 차치한다 해도 2018년에서 2020년에 이르는 3년 사이 우리는 우리의 걸음을 멈춰 세우고 방향을 틀게 만드는 고삐의 힘을 절감했다.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나 종전을 이야기하고 평화의 미래를 약속하면서 통일을 향해 달려가던 우리는 갑자기 코에 가해지는 얼얼한 통증과 함께 주저앉아야 했다. 미국의 간섭과 방해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평화의 봄을 향하던 남북 관계는 다시 얼어붙었고 열릴 듯하던 개성공단은 또 다시 기약 없이 녹슬어 간다. 우리 정부는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북측과 약속한 평화적 조치들을 하나도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 한미동맹의 이름으로 군사훈련을 계속하고 대북 제재를 계속 이어간다. 미국 앞에서 우리는 참 순하기도 하다.

지금까지 한미동맹에 코뚜레를 꿰인 채 순응하는 소였다면 올해는 제국주의를 들이받는 거친 소가 되어야 한다. 속박에서 벗어나 자주권을 찾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오랜 시간 서방의 시각에 길들여진 우리나라의 일반 정서를 고려하면 한미동맹에서 벗어나는 일은 마치 소가 코뚜레를 벗어던지는 일만큼이나 불가능한 일로 여겨진다. 자주성을 찾는 데 필요한 물리적인 힘도 미비하거니와 자주권을 찾아야 한다는 의식조차 희박해 보인다.

그러면 어떻게 자주권을 찾아야 할까? 코뚜레에 꿰이지 않은 우리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코뚜레를 거머쥐고 있는 미국을 향해 고삐를 풀라고 압박하는 우리 민족의 반쪽인 북측과 손을 잡아야 한다. 미국이 두려워하는 북의 힘을 활용해야 한다. 물론 미국은 남과 북이 손을 잡는 일을 한사코 막아설 것이다. 2018년의 획기적인 평화 조치를 한미워킹그룹이라는 채찍으로 멈춰 세운 것처럼 미국은 한반도 평화 조치를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엄연한 사실을 직시하자. 미국이 가라는 대로 가면 평화는 없고 늘 긴장과 전쟁의 위험만 있을 뿐이다. 미국이 고삐를 당긴다고 가던 길을 멈추면 우리 민족에게는 평화도 없고 통일도 없다. 이제는 들이받아야 한다. 동맹의 이름으로 우리 민족의 평화를 방해하고 통일을 막는 한 미국은 우리의 적이다. 이제 솔직해지자. 엄연한 간섭과 속박의 코뚜레를 언제까지 동맹의 이름으로 포장할 것인가.

신축년 올해는 한미동맹에 순응하여 미국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착한 소가 아니라 우리의 자주권을 위하여 코뚜레를 쥔 미국을 과감히 들이받는 거친 소가 되기를 소원한다. 죽을 각오를 하면 살 길이 열린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울 준비가 돼 있다. 죽은 듯 엎드려 있는 민중도 때가 되면 들불처럼 일어날 것이다.

/평화협정운동본부 집행위원장 colum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