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꾸준하게 군불을 때온 기본소득을 놓고 백가쟁명식 논쟁이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양상이 치열해 차라리 난타전으로 보는 것이 합당할지도 모른다. 논란에 발을 담근 인사 대부분은 차기 대선과 직간접으로 관계가 있어 대선 전초전이나 신경전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지난 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 뒤 기자들을 만나 “알래스카 빼고는 기본소득을 하는 곳이 없고, 기본 복지제도의 대체재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정세균 국무총리는 4일 외신 인터뷰에서 “지구상 기본소득제를 성공리에 운영한 나라가 없고, 한국의 경제규모를 감안할 때 실험적으로 실시하기엔 적절치 않다”고 강조했다. 지구와 알래스카 등 정치권에서 흔치 않은 용어들이 등장했다. 부당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수사(修辭)일 것이다.

이에 이재명은 7일과 8일 연속 페이스북을 통해 “다른 나라가 안하는데 우리가 감히 할 수 있겠냐는 사대적 열패의식을 버려야 한다”며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고 정책에도 경쟁이 필요하다”고 강하게 반격했다. “정치적 억지나 폄훼가 아닌 상식과 합리성에 기초한 건설적인 논쟁을 기대해본다”는 말까지 했다. 화가 좀 난 듯하다. 그러면서 자신이 구상하는 기본소득 개념과 지급액, 재원조달 방안, 기대효과, 시행시기 등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 지사가 그동안 일관되게 기본소득을 주장했으나 구상을 소상하게 밝힌 것은 처음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8일 “이 대표의 표현이 뭐 그렇게 틀린 말도 아닌데, (이재명의 반박이) 비판이 아닌 비난으로 들린다”라며 이낙연을 두둔하고 나섰다. 이재명 측은 최근 이 지사의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하다 보니 집중견제를 당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관계자는 “대권 잠룡들이 이 지사와의 기본소득 논쟁을 자신들의 존재감을 알릴 기회로 여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라 곳간을 책임지는 기획재정부는 당연히 기본소득제에 반대한다. 기본소득이 기존 복지원칙을 흔들 수 있고, 대규모 재원이 소요되는 등 부작용이 많다는 것이다.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기본소득제에 부정적인 기류가 우세하다. 대체로 현실론과 맞닿아 있다. .

하지만 (이 지사의 말대로) 선례가 없다며 포기할 것이 아니라 가능한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정치이고,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앞서 획기적인 실험을 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리고 기본소득제를 은근히 응원하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 그만큼 소득 불평등으로 인한 양극화 구조가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기본소득제 실현 여부를 떠나 공론화를 통해 제대로 한번 따져보는 것도 괜찮다. 여_야가 저급한 사안에 대해 저급한 방식으로 시도때도 없이 싸우는 현실보다는 나을 것이다. 정치에서 담론이 사라진지 얼마나 되었는지 기억조차 없다.

/김학준 논설위원 k1234@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