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9일『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이 통과되었다. 1988년 이후 약 32년 만에 이뤄진 전부 개정으로 지방의회 독립성 및 투명성 강화와 함께 특례시 부여 기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자 전국 시·도의회는 일제히 환영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간 고질적 문제로 제기되던 지방자치단체의 자치권 부족과 책임성·투명성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점이 핵심이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겠지만 이번 개정안을 바라보는 심경은 복잡하다. 지난해 7월,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지방자치법 전부개정법률안'은 주민주권의 실현과 지방자치체계의 실질적 자치권 부여이라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다. 지방행정의 객체로 머물러 있던 주민을 다시 지역의 주인으로 자리매김한다는 의미가 컸다. 하지만 국회 심의 과정에서 핵심인 '주민자치회'와 관련한 조항이 모두 삭제되면서 본말이 전도되었다.

현재 전국 각지에서 생겨나고 있는 주민자치회는 행안부 주민자치회 시범사업으로 2013년 개시되어 올해로 8년째를 맞고 있다. 지난해 6월 기준으로 118개 시군구 626개 읍면동에서 주민자치회 시범사업이 실시 중이다. 법적으로는 '지방자치분권 및 지방행정체제개편에 관한 특별법'과 관련 조례에 근거한 조직으로 행정안전부 장관이 시범적으로 설치·운영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하지만 시범 실시되는 주민자치회 사업은 사업 기간 등의 현실적 문제로 행정사무의 위임·위탁 등 법으로 명시된 권한 수행조차 불가능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 결과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에 주민자치회 운영과 기능 수행에 필요한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명시해 주민자치회가 실질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이런 취지를 살려 지난 1월 15일에는 주민자치회의 구성 권한을 지역이 갖게 하는 지방자치법 개정안이 다시 발의되었다. 해당 개정안에는 주민자치회의 안정적인 제도 안착과 효과적인 운영을 위해 주민자치회의 설치 근거를 지방자치법에 규정하도록 하는 한편, 주민자치회를 읍·면·동별로 설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발 더 나가서 김영배 의원이 대표 발의한 '주민자치 기본법'은 읍·면·동 주민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로 주민총회를 두어, 자치계획 승인, 행정사무의 위임·위탁, 주민감사·조례발안 등 청구권 결정, 국·공유재산 활용계획 심의, 주민세율 및 부담금 신설 제안 등 주민들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공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자치분권은 이미 시대적 과제이다. 다만, 분권을 추진하면 자치는 잘 따라 올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필요하다. 분명한 점은 자치는 저절로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질적 권한을 갖고 지역사회문제 해결의 주체로서 역할을 할 때 자치 역량은 축적될 수 있다.

향후 지방자치가 추구해야할 가치는 효율성 보다는 민주성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 정책수립과 이행 과정에서 시민들이 의사결정에 권한을 갖고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참여 툴을 만드는 것은 중요한 과제이다.

주민은 지역에서 관리의 대상이 아닌 스스로 참여하고 결정하며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주체이다. 주민자치는 국민의 주권이 삶터에서 실현되는 가장 강력한 길이기도 하다. 주민자치 없는 지방자치는 앙꼬 없는 찐빵일 뿐이다. 이제는 주민자치회 시범실시에서 시범을 떼고 전면실시로 한걸음 더 나아가길 기대한다.

/이필구 안산YMCA 사무총장 colum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