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욕쟁이 할머니 식당들이 유행을 탔다. 손님의 지위나 눈치를 살피지 않고 구수한 욕을 섞어 하고 싶은 말 다한다. 음식에 군말이라도 보탰다가는 또 욕이 날아오지만 손님들은 그래도 좋단다. “뭐 처먹을래” “니가 가져다 처묵으라” “고만 씨부리고 처먹기나 혀, 이 썩을 것들아”… 대개가 오랫동안 한 곳에 터를 잡은 노포(老鋪)들이었다. 맛도 있지만 안면이나 인정으로 장사를 했다. 지금도 검색어를 넣어보면 전국에 '욕쟁이 할머니'가 들어간 식당들이 주루룩 뜬다. 그런데 후기들을 보면 욕에 대한 얘기는 거의 안보인다. 그 할머니들이 거의 다 돌아들 가신 모양이다. 쩔쩔매야 할 손님에게 욕을 퍼붓고도 밥을 팔았으니 대단한 할머니들이었다.

▶구수한 욕쟁이 할머니들이 가고 나니 살벌한 애송이 욕쟁이들이 난무한다. 갑을관계를 넘어 을끼리도 험한 욕을 마다하지 않는다. 지난달 말 강원도 원주에서는 공무원 욕쟁이가 등장했다. 한 시민이 무단 주차된 차를 빼달라고 하자 술이 취한 채 나타난 30대가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나 공무원이야 XXXX. 네가 나한테 함부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내 대표가 누군지 아냐. 시장이야, 시장. XXX” 인근 CCTV에 고스란히 담긴 욕들이다. 과연 그 욕쟁이는 원주시 9급 공무원이었다. 그러고도 분이 안풀렸는지 문자메시지까지 보낸다. '배우고 자란 게 없네, 고졸이냐. 어디서 공직자에게 게기냐. 너같은 사람은 쳐 맞아야' 타임머신을 타고 나타난 조선시대 고을 아전인가. 뼈속까지 관존민비(官尊民卑)인.

▶지난 주엔 서울 한 어학원의 20대 여성 욕쟁이가 한 껀 했다. 주문한 커피를 날라 온 배달원에 대한 불만이었다. 배달대행업체에 전화를 해서는 20여분간 퍼부었다. “할 수 있는 게 배달 밖에 없으니 거기서 배달이나 하겠지” “학교 다닐 때 공부 잘했으면 그런 일 하겠냐” “(배달)기사들이 뭘 고생해, 오토바이 타고 부릉부릉하면서 놀면서 문신하면서 음악들으면서 다니잖느냐” 네티즌들은 어학원 강사인 줄 알고 흥분했지만 알고보니 셔틀버스 도우미 직원이었다. 공부 잘했으면 욕도 잘하나 보다.

▶마침 그 무렵 배달원노조가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한 채 수십억원씩 한다는 서울의 부촌 아파트 76곳을 콕 집었다. 자기들 편하려 배달을 시켰으면서도 오토바이는 못 들어오게 한다. 오직 도보 배달만 가능하다. 예전 군에서는 '보병은 5보 이상 구보, 포병은 5보 이상 탑승'이라 했다. 배달원은 100 보병이라는 얘긴가. 어렵게 도보로 들어와도 헬멧과 패딩, 우의 등은 벗어야 한다. 공포감을 주거나 로비를 더럽힐 수 있어서란다. 배달원에겐 화물엘리베이터만 허용 하는 곳도 있다. 이럴바엔 차라리 저 위의 욕쟁이들이 더 양반 아닌가.

/정기환 논설실장 chung783@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