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천은 인천인들에게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개항(1883년) 후 수많은 경제·문화·교육 등의 시설이 집중된 데다 경인철도 역이 들어서면서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했다. 자연히 이곳을 중심으로 각종 상거래가 활발했음은 물론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역을 기점으로, 인천에서 가장 번화한 상권을 누렸다. 인천시청이 지금의 중구청 자리에서 1985년 구월동으로 옮겨가고도, 한동안 그 명성을 유지했다. 그 때만 해도 거의 모든 시내버스가 동인천을 경유할 만큼, 교통의 중심지로서도 각광을 받았다. 50대 이상 인천인이라면, 한번쯤 사통팔달로 이어진 동인천 일대를 누볐던 기억을 갖고 있으리라.

경인철도가 국내 처음으로 개통됐던 1899년에 동인천역은 축현역으로 불렸다. 그러다가 인천을 대표하지 못하고 부르기도 쉽지 않다는 여론에 밀려 1926년 상인천역이란 이름을 얻었다. 광복 후 일제 잔재 청산에 앞서 1948년 축현역으로 되돌리기도 했지만, 1955년 모호하다는 역명을 이유로 동인천역으로 확정됐다. 역 이름을 놓고 이렇게 우여곡절을 겪은 곳도 없겠다. 아직도 인천의 동쪽도 아닌 곳에 자리한 역명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아무튼 동인천 일대는 한때 젊은이들에게 '낭만의 거리'였다.

동인천은 이제 인천의 대표 구도심으로 불릴 정도로 밀려나 있다. 시청 이전과 다른 지역 상권 발달 등으로 오늘날 동인천은 침체의 늪에 빠졌다. 좀처럼 옛 영화를 되찾지 못한 채 쇠퇴를 거듭한다. 여기에 '흉물'로 방치된 동인천역사 건물이 주위를 더욱 삭막하게 만든다. 지난 1987년 서울역·영등포역과 함께 민자역사(지상 6층, 지하 3층)가 들어섰지만, 2001년 인천백화점이 문을 닫고 쇼핑몰도 2008년 영업을 중단했다. 지역의 상권을 살려내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인천백화점과 쇼핑몰 폐업 이후 복잡하게 얽힌 채권 등 법적 문제로 인해 동인천 민자역사 앞날에 드리운 먹구름도 걷히지 않았다. 결국 국가 귀속 결정이 내려진 후 계속 인천의 '애물단지'로 전락한 상태다.

인천시가 얼마 전 동인천역 주변에 2300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하는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시와 한국토지주택공사가 함께 추진하는 사업으로, 올해부터 2030년까지 진행한다. 과거 전성기 동인천역 일대 명성을 되찾고, 그 주변을 20~30대 젊은층이 많이 모이는 중심 시가지로 역전(逆轉)시키기 위한 게 사업 목표다. 반가운 일이긴 해도 동인천역사에 대한 해법은 내놓지 않아 몹시 아쉽다.

국가시설을 인천시가 손대면 법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입장이지만, 동인천역사를 그대로 방치한 채론 '그림'을 잘못 그리는 듯하다. 어떻게 해서라도 동인천의 흉물로 남아 있는 역사 문제를 해결하길 바란다. 도시재생이란 과거의 명성을 되살리는 게 아니다. 더 쇠퇴하지 않도록 천천히 활성화를 유도해 오래 지속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주민·상인 등과 꾸준히 소통·논의해 동인천역사가 제자리를 찾았으면 싶다.

/이문일 논설위원 ymoon58@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