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여파로 문화생활이 단절된 지 만 1년이 되어가는 요즈음, 영화 <소울>에 대한 지인들의 호평 일색으로 호기심이 생겨 조심스레 극장을 찾았다. 영화 주인공 '조 가드너'는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중학교 밴드부 선생님이다. 그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사후세계로 가게 된다. 영화에서 그리는 사후세계에는 태어나기 전 세계도 공존한다. 누군가에게는 삶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돌아오는 곳인가 하면 누군가에게는 세상에 발을 디뎌 보기도 전의 시작점인 셈이다.

조 가드너의 오랜 꿈이 이루어지기 직전의 순간, 그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엄밀히 말하면 완전한 죽음도, 살아있는 것도 아닌 중간 단계를 맞이하게 된다. 그는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으로 돌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는 탄생을 거부하는 '태어나기 전 영혼'과 함께 현생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인생을 '맛보기' 하게 된 태어나기 전 영혼은 세상을 살아 보고 싶다는 의지와 꿈을 찾고 말겠다는 의욕을 가지게 된다. 반면, 간절한 꿈을 가졌던 조 가드너는 결국 자신의 꿈의 무대에 서게 되었고 존경하던 재즈 연주가로부터 극찬까지 받게 된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간절히 원했던 무대를 마치고 난 뒤 생각처럼 큰 환희가 느껴지지 않았다. 조 가드너의 일생은 오로지 재즈로만 가득 차 있었다. 누구와 얘기를 하든 무엇을 하든 재즈뿐이었다. 하지만 막상 꿈을 이루고 오히려 그는 허무함을 느낀다.

그는 집에 돌아와 피아노 앞에 앉아 그동안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살아왔던 평범한 일상을 음미하며 피아노 연주를 시작한다. 매일 학교로 출근하던 출근길, 악기 연주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며 수업하던 순간, 어머니의 가게에 들러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던 순간, 어릴 적 아버지에게 악기를 배우던 순간. 그에게 영감을 주는 것은 꿈에 바라던 무대가 아니라 너무나 평범하고 일상적인 순간들이었다. 꿈이 빛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삶을 지탱해주는 단단한 일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초반부를 볼 땐 이전에 많이 보던 주인공이 꿈을 이뤄가는 이야기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웬걸,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정반대다. 오로지 큰 꿈을 꾸고 가슴에 불꽃 같은 열정이 있어야만 삶이 귀해지는 것이 아니다.

일상 하루하루가 당신이 살아가는 이유이며 목적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높은 목표를 가져야 하며 원대한 꿈을 품으라는 말을 오랜 시간, 흔히 들어왔다. 취업은 말할 것도 없고 학교 수강신청이며 공연 예매까지 피 튀기며 해야 하는 무한경쟁에 이제는 코로나까지 겹쳐져 숨 쉴 구멍을 주지 않는 이 시대에 더없이 지쳐 버렸다. 물론 꿈은 귀하다. 꿈은 별다르지 않은 일상을 견디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누구나 가슴이 터질듯한 꿈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자신의 존재 목적이 태초부터 새겨져 있다는 듯 뚜렷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엔딩에 '누군가는 강가에 앉으려고 태어나고, 누군가는 벼락을 맞고, 누군가는 음악에 조예가 깊고, 누군가는 예술가이고, 누군가는 물에서 수영하고, 누군가는 단추를 만들고, 누군가는 셰익스피어를 읽고, 누군가는 그냥 엄마다. 그리고 누군가는 춤을 춘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이처럼 살면서 저마다의 꿈을, 삶의 목적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사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이 가는 것에, 시선이 머무는 것에 충실하고 마음을 다하면 그만이다. 아직 꿈을 찾지 못했다고 해도 일상을 살다 보면 어느 날 마음속 작은 불씨가 활활 타오르는 날이 올 것이다. 매일의 일상을 담대히 마주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그 자체로 빛난다.

/양윤지 어플라이드리딩어학원 강사 colum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