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살 되기 며칠을 앞두고 아버지는 당신이 태어나 평생을 이사 한번 하지 않고 부모님을 모시고 형제 친척들과 묵묵히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경북 고령의 고향 촌집에서 몇 년간의 투병생활을 마감하고 운명하셨다. 40여 가구 중 30여 가구가 더 큰 옆마을로, 그리고 큰 도시 대구로 이사를 갔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힘든 농삿일을 하시며 없는 살림살이에도 일가친척의 경조사는 물론 성주에서 하는 종중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하셨고 평생을 만족하시며 고향땅에 사시다 당신이 살아 생전 그리도 가시고 싶어 하시던 조상묘와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 바로 아래에 잠드셨다.

1월25일 장인어른이 담낭암으로 몇 개월 투병을 하시다 공교롭게도 저의 아버지 제삿날에 운명을 달리하셨다. 장인은 충청도 보령이 고향이고 40여년 전 가족 모두를 데리고 올라와 도화동에 자리를 잡으셨고 이곳 인천에서 운명하시는 날까지 그야말로 제2의 고향으로 살아오시다 당신 댁에서 장모님의 극진한 간호와 가족들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으시다 장모님 품에 안긴 채 평온하게 눈을 감으셨다. 평상시 장인은 고향땅 보령보다 지인들과 가족이 있는 이곳 인천이 좋으시다고 하시며 인천에 있기를 원하셔서 인천에 모셨다.

1999년 인천에 첫발을 내딛었으니 내가 인천시민으로 살아온 지가 올해 22년째다. 인천으로 취업하러 간다고 했을 때 고향친구들이 '인천 그 짠물에 왜 갈라카노?'라며 걱정 아닌 걱정을 해주었을 때 난 인천이 얼마나 먼지 어떤 도시인지 전혀 몰랐고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생소한 도시였지만, 선입견이나 두려움은 없었다. IMF 직후 대기업에 취업을 해서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왠지 해외영업이란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 남동공단의 제조업체에 취직을 하였고 동춘동, 논현동, 간석동, 도화동, 원당동, 송도 등 인천의 이곳저곳에서 살았지만 흔히 텃새나 경상도에서 왔다고 차별 등의 불편함을 전혀 느끼지 않았고 오히려 모두가 열린 마음으로 따뜻하게 반겨주었다.

22년간 산 인천에서 사위로서 처음 치룬 장례식이었고 코로나 등의 문제로 인하여 많은 염려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 인천의 마음은 너무나도 따뜻했다.

예상하지 못한 많은 분들의 조문과 위로를 비롯하여 아내와 다니는 송도 제자감리교회의 추도예배와, 장인어른이 다녔던 원당동 성당에서의 위령미사에서 보여준 많은 분들의 진심어린 사랑과 위로는 장인과 나의 가족이 이곳 인천시민으로 살아왔고 살아있음을 다시금 느끼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사람이 어떻게 사느냐는 것은 정말 중요하고 철학적인 이야기이다. 그리고 사람이 어디서 누구와 사느냐도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더 좋은 환경에서 더 좋은 사람들과 더 좋은 것을 누리며 명품도시에 살아가고 싶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 인천은 배우자를 만나게 해주었고 사랑하는 아들을 얻은 것도 인천이요 첫 집을 장만한 것도 인천이고 첫 사옥도 이 인천에서 이루었다.

이렇게 나에게 수많은 선물을 안겨준 인천의 역사를 보면 한민족의 뿌리인 단군왕검의 제사를 모시는 참성단이 있고, 381년 소수림왕 때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사찰인 강화도 전등사는 물론 한국 최초의 감리교 예배를 드린 내리교회가 있는 영적도시이다.

또 인천은 고려시대 국운이 위태로울 당시 16년간 팔만대장경을 제작하며 대몽항쟁의 성공을 기원하였고 6_25 당시 성공확률 5천분의 일의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며 한반도와 대한민국을 지켜낸 호국의 도시이다. 그뿐 아니라 세계 최고의 공항으로 전 세계에 대한민국을 홍보하는 관문인 인천공항, 짜장면, 쫄면, 사이다의 탄생은 물론 세계 최초 복제약으로 FDA의 승인을 받은 셀트리온 등 수많은 새로운 것이 만들어진 창조의 도시이다.

세계적으로 이렇게 대단하고 멋진 도시가 얼마나 있을까? 장인을 이곳 인천에 모시고 이제 나 또한 앞으로 인천시민으로 자랑스럽게 살다가 인천에서 잠들고 싶다고 나의 아들에게 말했다. 인천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차별하지 않으며 서울과 경기도 2300만명을 배후에 두고 있어 활력이 넘치고 세계로 뻗어나가는 글로벌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나는 오늘도 기도를 한다. “이 도시가 영과 혼과 육이 완전 기능하는 세계 최고의 명품도시가 되기를….”

/이윤규 썬파크(주) 대표 colum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