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주변 분들이 노후에 안정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생활 사이클을 바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젊어서 한창 일할 땐 비록 힘들지만 열심히 살면서 자신의 월급과 비교해 은퇴 후엔 국민연금, 퇴직연금 등을 합해도 50%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신혼 시절 사글세나 전세에서 시작해 자그마한 아파트를 분양받으면 대출을 받아 내 집이라는 안정된 주거를 마련한다. 물론 집값이 오를 기미가 있고 자녀 수가 늘거나 자녀가 먼 지역 상급학교로 진학해 통학 여건이 여의치 않게 되면 좀 더 큰 집을 얻거나 삶의 질을 높이려 대출이나 부모님 신세를 지고 집을 옮기기도 한다.

평생직장에서 정년을 맞아 은퇴하거나 자녀들이 성장하면서 결혼자금 수요 등이 겹치면 비교적 집값이 싼 지역이면서 원거리 이동이 적고 생활비가 덜 드는 도심지 외곽이나 교외로 이사한다. 그래도 여윳돈이 있을 경우 은행에 예치해 이자라도 받아 생활하는 게 다반사였다. 근래엔 금리가 자꾸 떨어져 은퇴 후 임대소득으로 눈을 돌렸다. 현재 사는 작은 집 이외에 또 하나의 작은 집이나 오피스텔에 투자했다. 하지만 요즘엔 정부의 주거정책이 요동을 치면서 그마저 쉽지 않게 되었다.

한국에서 집은 '그냥 사는 곳'이 아니라 가장 든든한 '노후 자산'이다. 노후 대비 수단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은 은퇴자들 입장에선 쓰러져가는 집 한 채라도 있어야 그런대로 노후 걱정을 덜 수 있다. 쓸 돈은 늘고 살아갈 수 있는 자금 여유가 없더라도 그나마 금융정보를 아는 은퇴자는 역모기지(시가 9억원 이하 주택)를 하거나 자신의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생활자금을 대출받는다.

집은 아무리 작고 가격이 하락한다손 치더라도 은퇴자에겐 편히 쉴 수 있는 생활공간이 돼준다. 다행히 인천은 저렴한 낡은 아파트를 구입할 정도의 자금에다 주변으로부터 약간의 빚을 내면 매달 월세를 받는 지하상가 한 칸이라도 마련해 한숨을 돌릴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현실적으로 경제적 재기를 꿈꾸기 힘든 은퇴자에겐 무시할 수 없는 심리적 안전판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계속 집값이 오르고, 믿고 샀던 지하상가는 조례 개정으로 인해 팔 수도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불안해진 은퇴자 점주와 입점자 모두 손을 놓으면서 지금 인천시내 지하상가는 활기를 잃었고 무려 30%가량은 문을 닫은 상태다. 코로나19 여파도 있지만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와 메르스 및 사스 전염병 때도 이겨냈던 지하상가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동인천역 방공호 개념에서 시작된 인천의 지하상가는 초창기 상하수도 시설이 안돼 있었고 정전이 되면 촛불을 밝혀가며 어렵게 성장해 왔던 상권이다. 역세권인 동인천을 비롯해 주안, 제물포, 부평 등지의 지하상가는 이렇듯 시민들의 귀중한 자산과 땀방울이 모아져 특색있는 상권으로 발달해 왔다. 반면 경기도와 서울 등 다른 지역 대부분의 지하상가는 애초에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자산으로 출발했다.

인천의 지하상가는 2002년 지하상가 관련 조례에 근거하고 시장 원리에 따라 엄연한 사적 재산권으로서 매매와 임대차가 가능했다. 수많은 은퇴자들은 마지막 생계수단이자 노후를 위한 투자자산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감사원 등이 이와 같은 매매 및 임대차 행위가 상위법에 위배된다는 지적을 하기도 했으나 역대 인천시장들은 지하상가 조례를 개정하지 않고 지하상권 활성화를 적극 지원한 끝에 한때 인천의 지하상가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단골 관광지로서 역할해 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에 인천시는 별안간 관련 조례를 개정해 지하상가 점주와 입점자 등 서민들의 삶의 의욕을 꺾고 좌절의 시련을 주고 있어 안타깝다. 과감한 정책 전환을 통해 인천만의 특화된 지하상권 활성화 대책이 마련되길 기대한다. 특히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B노선 환승역이 될 부평역 중심의 역세권 활성화를 위해선 부평역 지하상가부터 되살아나야 한다. 시비를 투입하거나 민간자본을 적극 유치해 지하상가 공간을 넓히고 다양한 시설을 입주시켜 젊은이들이 모여들 수 있도록 유인해야 맞다고 본다. 활기가 넘치는 인천 상권을 보고 싶다.

/김실 전 인천시교육위원회 의장 colum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