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들이 북한 사정을 털어놓는 TV프로그램에서 뜻밖의 말을 들었다. 북한에서도 과외가 성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당국은 개인 과외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장마당을 중심으로 북한에 시장경제가 스며들면서 부(富)를 축적한 신흥 부유층과 기존 특권층들이 자녀를 김일성종합대학이나 평양의대 등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 고액 과외를 하고 있다고 한다.

과외비는 대개 달러로 흥정하는데 한달에 50달러 정도다. 북한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이 북한돈으로 3000~4000원(1달러는 북한돈 8000원선)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비용이다. 때문에 교수_교사들은 학교 교육은 등한시하고 개인 교습에 매달린다고 한다. 한 탈북민은 “남한에 강남 치맛바람이 있다면 북한엔 평양 치맛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1등 지상주의'는 남북한 공통인 것 같다.

올릭픽 등 경기에서 1위와 2위는 천양지차다. 국민들로부터 받는 각광은 말할 것도 없고 국가가 제공하는 연금도 차이가 크다. 때문에 우리 스포츠계는 '엘리트 체육', '결과 지상주의'에 매몰돼가고 있다. 1등에만 집착하지 말고 스포츠맨십을 발휘하는 정도를 걸으며 '질 수도 있는 경기'를 해야 한다고 주문하면 헛소리로 들릴 것이다.

가정, 교육현장, 사회 그 어느 곳에서도 이기는 방법만 가르쳐주고 져서는 안된다고 몰아세운다. 남을 이기는 아이를 만들겠다며 사교육에 재력을 쏟아붓는 부모는 많지만, (빈말이라도) 다른 사람의 존재를 인정하고 양보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부모는 드물다. 지는 법을 알지 못하고 사회에 나가면 패하는 자신을 감당하지 못해 좌절하게 된다.

지난해 의대생들이 의대정원 확대에 반대해 파업을 벌였을 때, 졸업도 하기 전에 미래의 밥그릇을 살피는 영악함에 놀랐다. 한 교수는 “고등학교에서 1등만 한 학생들에게 보상이 주어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제자 사랑인지 엘리트 집단의 동질성 증명인지 헷갈렸다. 이래서 '인성교육이 중요하다'는 말이 오랜만에 용도를 발휘했다. 애나 어른 모두에게 적용되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학창시절 1등만 했을 것으로 보이는 검사들이 임용될 때 선서하는 '정의 구현'은 어떻게 됐는지도 궁금하다. 물론 초심을 유지하는 검사도 있겠지만, 어느새 '기득권'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사람들에 대해 한 언론인은 “개천에서 난 용은 개천을 돌아보지 않는다”고 썼다. 입신양명하기 전에 소외된 사람, 약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할 줄 알았던 사람이 돈이나 권력을 얻으면 타인과의 공감력이 떨어지고 도덕 수준도 약해진다는 정신의학적 분석도 있다.

그동안 성공한 사람들이 '갑질'을 했다가 문제가 된 사례가 수없이 많았던 점을 떠올리면 설득력이 있다. 뇌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해서 그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 될 때 쾌락의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분비되기 때문에 기분이 좋아진다고 한다. 돈이나 권력에 중독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은 아니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능력 만능주의가 성공한 사람에게는 오만을 갖게 만들고, 실패한 사람은 좌절과 무력감에 빠져 살아가게 만든다”고 밝혔다. 나아가 성공한 사람들은 온전히 자신의 노력만으로 성공했다고 오판해 패배자를 깔봐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되며, 이로 인해 사회적 결속력과 연대감이 약화되고 민주주의를 역행하게 만든다고 강조했다.

국민을 능력에 따라 서열화하고, 1등만이 최고로 여겨지며, 승자가 독식하는 사회는 지속가능할 수 없다. 인생은 일상적인 패배와 예외적인 승리로 이뤄진다고 해도 큰 과언은 아니다. 1등은 한 명뿐이다. 부모와 세상이 만들어낸 '1등 지상주의'에서 무구한 아이들을 이젠 구해내자. 세상은 넓고 기회는 많다. 1등이 아니더라고 적응하고 잘할 수 있는 분야는 널려 있다. 오히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심과 정의로움은 1등을 못해 설움을 겪어본 사람들에게서 나올 수 있다. 1등만 알아주고 기억하는 허접스런 세상은 이쯤에서 끝내자.

/김학준 논설위원 k1234@incheonilbo.com